언론대책수립 방안이 포함된 한나라당의 이른바 ‘대권 문건’ 파문으로 정치·언론의 올바른 관계정립이라는 해묵은 과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특히 언론사 논설 집필진 성향파악 및 관리방안으로 적대적 집필진의 비리 축적과 활용방안, 우호 언론그룹의 조직화 필요성 등이 거론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는 “문건 내용과 거기에 담긴 발상은 역대 정권에 버금가는 오만함을 드러내 보였다”며 “정치권에서 항상 언론을 관리하려 드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라고 하더라도 이번 문건을 정당화할 순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주동황 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공당의 입장에선 생각할 수 없는 치졸한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이들이 집권해도 발전적인 언론관계를 기대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무조사나 관련 법 제·개정 등 정당한 방법이 아닌, 여전히 음모론적인 관점에서 언론을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 교수는 “언론도 지난해 문일현 기자의 ‘언론대책 문건’ 때에 비해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야당에 불리한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계산이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다른 한편 언론계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언론을 감시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대상’으로 여기는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데 대한 내부 자성론도 제기하고 있다. 일정 부분 언론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입장은 기자가 언론대책 문건을 만들어 정치인에게 직접 조언하고 또다른 기자가 이를 다른 정치인에게 빼돌린 사실이 밝혀져 언론계가 발칵 뒤집혔던 게 지난해 10월, 불과 1년여 전 일이었음을 환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 정치부 기자는 “또다시 정치권에서 이같은 문건이 나왔다는 사실은 여전히 정치·언론 관계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언론도 특정 정치세력에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지는 않았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비정상적인 정언관계의 단절은 언론의 자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 보도나 언론문건 파동 등에서 드러났듯 일련의 정언유착 행태로 인해 정치권도 여전히 언론을 밀약이나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언론 스스로정치권이 그런 식의 발상을 하게 만든 주역들과 단절하지 않는다면 이번 일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앞으로도 되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