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지난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초청으로 방북한 국내 언론사 사장단 46명은 ‘남북언론 공동합의’를 이끌어내면서 공식 교류의 첫 물꼬를 텄다. 상호 비방·중상 중지, 교류협력 추진 등 상호이해에 관한 명시적 합의를 비롯해 ‘남북언론교류협력위원회’ 구성 등 언론 분야의 자체적인 교류창구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아울러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상봉, 장관급회담 등 남북 상호취재가 성황을 이뤘고 개별 언론사들의 방북취재도 잇따랐다.
하지만 남북화해라는 새로운 취재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통일부 기자실이 방북취재단의 효율적 운용을 놓고 마찰을 빚었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 취재와 관련해 국내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 선발과정에도 잡음이 일었다. 또 남북 적십자회담과 당국자회담에서 일부 남한 언론사 보도가 논란을 빚었는가 하면 2차 이산가족상봉 평양 공동취재단으로 방북했던 조선일보 김창종 기자가 3시간 동안 북측에 의해 억류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광고 시장 ‘천당에서 지옥으로’
한 광고국 직원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는 말로 2000년 세밑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30~40%의 전례 드문 성장을 보인 상반기 광고 시장이 하반기 들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3월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기 시작한 광고시장은 9월 한 달 한자리 수 근방을 맴돌다가 하반기 들어 뚝 떨어졌다. IMF 이후 점차 풀렸던 기업의 광고비 지출은 다시 꽁꽁 묶였다. 올해 초 IT·정보통신 열기도 싸늘하게 식었다. 광고 감소율은 전년 대비 평균 20~30% 정도였지만, 체감 온도는 그보다도 훨씬 낮았다.
기자들은 취재 가욋일로 광고 특집을 준비하면서 감원·무급휴직 논의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약체(弱體) 언론사의 자연 도태설까지 공공연히 돌았다. 올 하반기 ‘광고 한파’가 광고 중심 수익구조라는 언론계의 취약점을 드러낸 우울한 ‘사건’이었다면 마땅한 활성화 요인이 없는 내년 광고시장은 언론사의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밝지 않은 전망을 내오고 있다.
언론계 인사 시스템 변화 바람
지난 5월 동아일보는 경제부장, 금융부장을 각각 매일경제, 한국경제에서 스카웃하면서 언론계에 충격을 던졌다. 부장의 외부 영입은동아일보로서도 초유의 사건이었고, 경제부 기자들을 중심으로 사내 반발을 부르는 등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동아일보 사례는 올 들어 경력기자 수시 채용으로 대표되는 언론사 인사 시스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이 같은 양상은 연초 언론계를 달군 이른바 ‘벤처 엑소더스’를 필두로 한 기자 이직 바람에서 비롯됐다. 각 사별로 많게는 20명 안팎, 적게는 5명 안팎의 기자들이 새 둥지를 틀면서 언론사들은 인력 공백을 경력기자 채용으로 메웠다.
먼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신문사들이 스카웃에 나섰고, 경제지에서 종합지나 신문사 인터넷으로 이동도 빈번해졌다. MBC도 방송사로서는 처음으로 경력기자를 모집했다.
다른 한편 언론사들은 관련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을 채용하거나 내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기자 양성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기자제 도입 역시 채용 양상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한국일보 연봉제 도입
올 5월부터 시행된 한국일보 편집국 연봉제는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제안해서 도입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편집국 기자들은 3월 말 (동종업계 최고 대우를 전제로 한) ‘연봉제 추진 찬반 투표’를 실시해 찬성률이 85.9%에 달하자 회사에 공식적으로 연봉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후 연봉제를 희망하는 기자들은 노조를 탈퇴하고 연봉제 시행 첫해 연봉에 대해 기존 임금 총액의 50% 인상이라는 조건으로 회사와 연봉계약을 했다. 현재 노조원으로 남아있는 기자 6명을 제외하면 편집국 전원이 연봉계약을 맺고 있는 것이다.
첫해는 임금 인상폭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면서 내년 4월 처음으로 시행될 차등 연봉 계약은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만든 평가안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당시 연봉제 도입을 두고 일부 기자들은 “벤처로의 이직 등 기자 이탈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한국일보의 현실적인 위기 타개책”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노조 차원의 공식 논의없이 편집국 단독으로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영남일보 법정관리 신청
지난 10월 26일 영남일보가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IMF 이후 경영악화가 계속되고 모기업인 갑을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뚜렷한 타개책을 마련할 수 없었던 데 따른 결정이었다.
그러나 다음달 20일 대구지법은 과도한 부채와 누적 적자를 이유로 회생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법정관리 신청을기각했다. 영남일보가 곧바로 항고를 제기함에 따라 현재 법정관리 여부는 대구고법의 결정사안으로 넘어간 상태다.
영남일보의 법정관리 신청은 지방언론의 심각한 경영난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대구일보는 12월 20일부터 무기한 휴간에 들어가기도 했다. “내핍생활의 체질화”라는 한 지방신문 기자의 표현대로 지방언론은 IMF 이후 뚜렷한 회복기미 없이 계속된 경영악화에 시달렸다. 산발적으로 ‘자율적 통폐합’이 거론되거나 지역여론에 기반한 ‘지역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방언론 정상화라는 과제는 여전히 뚜렷한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CBS 파업 석달째…
임단협 협상이 결렬되면서 지난 10월5일 전면 파업에 들어간 CBS노조(위원장 민경중)가 3달째 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지난 4년 동안 임금이 동결 또는 삭감돼 왔기 때문에 임금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사측이 임금동결을 고수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또 단협에서도 사측이 편성·보도국장에 대한 노조의 추천권을 삭제하자고 하는 등 편집권 후퇴를 골자로 하는 단협안을 내놓아 갈등을 빚고 있다. CBS노사는 최근 들어서야 협상을 재계하고 수정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아 파업이 해를 넘기지 않을까 우려를 낳고 있다.
한편 CBS노조의 이번 파업은 권사장 퇴진운동과도 미묘하게 맞물려 있어 파업의 성패 여부에 따라 권사장의 거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노조는 지난해에도 권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33일간 파업을 벌인 데 이어, 올해 초 ‘축 총선화분’ 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권 사장 퇴진운동을 벌였다.
비리… 구속… 되풀이된 기자 윤리 논란
지난해 간부에서 평기자까지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져 언론윤리가 도마 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기자비리가 되풀이됐다.
먼저 지난 8월에는 고영성 대전MBC 기자가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 전직 건설업자가 인터넷상에 글을 올리면서 공론화된 이번 사건은 결국 검찰 수사로 이어졌으며 고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보도를 빌미로 수천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대전MBC는 사장 명의의 공개사과문을 방송하기도 했으며 기자협회도 규약에 의거, 고 기자를 제명 조치했다.
11월 들어서는 한 지방신문 정치부장이신축공사 입찰과정에서 제기된 담합의혹을 보도하지 않겠다며 광고비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자들의 비리 의혹은 주요 사안마다 불거져 언론계를 당혹스럽게 했다. 11월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정씨의 사설 펀드 투자자 명단에 또다시 언론인들이 거명되면서 해묵은 언론윤리 논란이 재연되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언론사 사주
언론사 사장들의 비리와 추태가 ‘유난히’ 심했던 한 해였다.
김종철 연합뉴스 사장이 리베이트 수수 등의 이유로 지난 8월12일 물러났다. 그 사흘 뒤 탈세혐의로 집행유예 중이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사면·복권됐다. 홍 회장은 사면·복권 보름만에 회장직에 복귀했다. ‘물러난 김 사장’은 사내에서 거친 비난을 들었고 ‘돌아온 홍 회장’은 사외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은 지난 10월13일 ‘고대 앞 낮술 사건’으로 다시 한번 인구에 회자됐다. 그 일주일 뒤에는 연합뉴스 김근 사장이 사장 선임 한 달만에 취임식을 가졌다. 김 사장의 취임은 29일간의 노조 출근 저지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낮술 사건으로 ‘사퇴’ 의사를 밝힌 김병관 회장은 장남 재호씨에게 부사장직을 제안해 다시 구설에 올랐고, 어렵게 ‘취임’한 김근 사장은 전주고 인맥의 정실 인사라는 내부 불만을 사고 있다. 한편 김근 사장으로 불거진 연합 사태는 대한매일과 함께 정부 소유 언론사의 소유구조 개편 논의를 불러왔다.
온라인 기자제 도입 본격화
인터넷이 새로운 취재영역으로 떠오르고 대안언론으로서의 가능성과 영향력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언론사들은 올 초부터 인터넷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사이버 기자제를 도입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했다. 특히 중앙 ‘사이버리포트’ 한겨레 ‘하니리포터’ 동아 ‘e-포터’를 비롯해 순수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 뉴스보이 등에서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온라인 기자제 도입이 본격화됐다. 또 아이뉴스24, 이데일리 등 일간지·경제지 기자들이 주축이 된 인터넷매체도 잇따라 창간됐다.
하지만 인터넷 언론의 영향력이 확산되면서 기존 언론사 기자들의 ‘수난’도 잇따랐다. MBC 최모 기자 남대문서 사건, 경향 ‘입험한 여경’ 기사 논쟁, 인터넷을 통해 비리 의혹이 공개돼 구속된 대전MBC 고영성 기자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들. 익명을 악용한 음해성정보와 허위사실 유포 등 부작용도 끊이지 않았지만 기자 비리 고발, 기사 논조 비판, 왜곡보도 및 연출취재에 대한 지적과 시비 논쟁 등은 인터넷이 지닌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언론산별노조 출범
언론산별노조가 몇년간의 산고 끝에 공식 출범함에 따라 그간 침체돼 온 언론 노동운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은 지난 11월24일 산별노조의 새 명칭인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출범식을 갖고 산별 체제로 전환했다. 언론사간 무한경쟁 등으로 자본 영향력의 확대, 노동환경의 악화가 심해지면서 언론사의 노조 활동이 침체되자 언노련은 이를 기업별 노조의 한계로 규정하고 산별노조건설을 추진해 왔다. 따라서 자사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언론개혁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전망이다.
개인 자격으로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가능해져 언론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도 보다 기여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 그러나 아직까지 동아, 조선, 중앙, SBS 등 주요 언론사들이 합류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보다 지부의 권한이 많아 장기적으로 중앙의 교섭력을 키우고 안정적인 산별체제를 정립시키는 등의 해결 과제도 많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