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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광고 이래도 되나?

허위.과장.불법 가리지 않는다

김 현  2001.01.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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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자율심의기구는 심의 규칙 2조6항에서 ‘광고의 내용과 표현은 진실해야 한다’는 ‘광고의 진실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광고를 싣고 있는 언론의 진실성은 어떨까.

민영미디어렙 설립을 둘러싸고 각 언론사가 논박을 벌이는 가운데 소비자에게 보다 절실한 문제인 상품 광고의 진실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방송 광고는 사전 심의를 거치는 반면 신문은 사후 심의인데다가 언론사 수도 훨씬 많아서 외부 규제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상황이다.

신문 과장 광고의 현실과 언론사의 책임, 그리고 대안을 들어보았다.





99년 6월, 광명에 사는 주부 A씨는 핸드폰 보상 교환을 해준다는 백화점 신문광고를 보고 집을 나섰다. 어느 기종이든 무조건 2만원에서 7만원까지 상품권으로 교환해준다는 조건이 눈에 띄었다. 그 정도라면 발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백화점에 막상 도착해서 그녀가 들은 얘기는 ‘무조건’이라는 광고 내용과는 달랐다. 특정 기종과 구식 모델은 교환할 수 없었다. 보상 수준도 대부분 1만원에 그쳤다. 사람들의 항의가 잇따랐지만 백화점측은 막무가내였다. A씨는 1만원 짜리 상품권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슬며시 화가 났다. 백화점도 백화점이지만 광고에 제외 품목이라도 표시가 됐더라면 적어도 헛수고는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A씨는 소비자보호원에 전화를 걸었다.

“신문에 난 광고가 이래도 되나요…”



지난해`주의·경고`113건

경기가 나빠지면서 신문의 과장·허위 광고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광고자율심의기구로부터 과장 광고 결정을 받은 신문·방송·잡지 광고는 97년 1362건에서 98년 1739건으로 급증했다가 99년에 1314건으로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는 최근 경기 불황을 타고 다시 늘고 있다.

신문윤리위원회의 최형민 심의위원은 “일간지 과장 광고가 IMF를 겪고 난 이후 한동안 뜸했는데 최근 2개월 전부터 다시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2000년 한 해 신문윤리위로부터 주의 및 경고를 받은 신문 광고는 113건. 이 중 23건이 과대 광고를 이유로 지적을 받았으며 그 중 13건의 주의와 경고는 4/4분기 동안 이뤄졌다.

그 양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15일자 36면에 “2700만원이면 아파트가 5채”라는 제목의 한 건설회사 광고를 실었다. 그러나 이 금액은 21평 아파트의 계약금 540만원을기준으로 한 것일 뿐 실제 총보증금까지 합하면 아파트 한 채에 2700만원이 필요하다. 이같은 구체적인 사항은 광고 하단에 작은 글씨로 표시돼 있다. 중앙일보의 광고는 신문윤리위로부터 비공개 경고를 받았다.

기사식 광고도 기사의 공신력을 빌은 광고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사례다. 작년 한해 신문윤리위가 주의·경고 결정을 내린 기사식 광고는 44건에 이른다.

광고자율심의기구의 한 관계자는 작년 한 해 과장광고에 대해 “양적으로도 늘었지만 질적으로 더 낮아진 것이 보다 큰 문제”라며 “규제 수단도 광고 중지 등의 강한 제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광고도`버젓이`게재

과장·허위로 인한 언론사 광고 뿐 아니라 불법으로 규정된 업종에 대한 광고도 신문 지면은 ‘치외법권’지역이다. 이른바 ‘카드깡’으로 불리는 카드 대출업은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상 명백한 불법이다.

99년 5월 개정된 이 법은 카드대출업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카드대출 광고는 아무런 제재 없이 신문 광고에서 버젓이 등장한다.

최형민 심의위원은 “스포츠 신문을 비롯해 경향, 대한매일, 문화, 중앙 등의 신문이 카드 광고를 자주 게재한다”고 말했다. ‘업종’은 불법이지만 업종에 대한 ‘광고’는 공공연히 지면에 실리고 있는 것이다. 카드 대출 광고가 워낙 횡행하자 신문윤리위에서는 2년 전부터 아예 지적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다.

과장·허위 광고가 늘고 있는 것은 경기 침체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광고 내용에 대한 언론사 자체 검증이나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광고 게재 시스템을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 광고국 직원은 “마감 1~2시간 전에 필름 상태로 오기 때문에 교정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카드 광고에 대해 “광고국 내에서 문제제기는 없었지만 문제는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영업소에서 보내 온 광고를 그대로 싣는 것이어서 별다른 제재 장치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광고국장은 “광고 심의는 언론사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과대 광고의 책임은 언론사보다는 광고주에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과`광고는`무관?

그렇다면 언론사는 잘못된 광고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을까. 광고자율심의기구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조사에서 광고전문인 407명은 허위·기만광고에 대한 소비자 피해시 책임 당사자로 대부분 광고주(86.7%)를 꼽았으며 언론사 책임은 광고대행사(6.9%)-소비자(4.7%)에 이어 1.2%에 그쳤다.

그러나 조전근 목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언론개혁시민연대 토론회에서 “광고주의 도덕성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광고자율심의기구 김태선 제3광고심의위원장은 작년 한해 신문광고의 특징을 ‘질 저하’로 규정하면서 “소비자를 오도하고 기만하는 부당광고가 일간지에 확산되고 있는 현상은 광고 수입을 위해 독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 신문사 편집국 기자도 “매체의 공신력과 영향력에 따라 광고 단가가 다르게 매겨지는 것을 보더라도 광고가 어느 신문에 실리느냐가 광고 공신력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며 “이는 독자들에게 있어 매체의 공신력이 광고의 신뢰도에 전이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같은 달 소비자보호원에서 실시한 조사를 보면 광고에 대한 신문사의 책임이 보다 명확해 진다. 전국 300명의 소비자들은 “히트상품 광고를 믿고 상품을 구입했는데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면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43.7%의 응답자가 ‘히트상품 인증 마크를 준 곳’을 꼽았다. 전체 히트 상품 선정기관 30여 곳 중 신문사는 18개 사에 달한다.



광고도`정정하라

광고 내용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주장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정정 광고제’에서도 드러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언론의 과장 광고가 심해지자 올해 1월 1일부터 정정광고제도를 시행했다. 정정광고제에 따르면 광고주가 과장·왜곡광고를 실었을 경우 원래 광고 게재횟수의 3/10 수준까지 정정 광고를 게재해야 한다. 공정위는 광고비용을 전액 광고주에게 물도록 함으로써 언론사의 책임을 면해주었다.

정정광고제도는 신문사의 광고 게재에 보다 신중을 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광고국 직원은 “대부분의 광고가 후불인 상황에서 원 광고비도 받기 어려운데 정정 광고비까지 부담하라면 누가 내겠느냐”며 “광고를 실을 때 좀 더 신중히 하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의 광고 규제가 신문사에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는 이유로 관계자들은 “언론사와의 마찰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작년 10월 음란광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700 전화서비스 광고의 사전 심의를 ‘컨텐츠 사업연합회’라는 곳에 이관했다. 이 단체는 700 음성 정보의 컨텐츠를 만들어 업체에 공급하는 곳이다. 한 광고 관계자는 이 조치를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긴 격”이라고 비난했다.



광고도`기사처럼`확인해야

언론·광고계 전문가들은 느슨한 법 적용과 정부 당국의 관리 소홀 속에서 신문사의 과장 광고 규제는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대안을 내놓는다.

광고 수입이 전체 재정의 80%에 달하는 우리 언론의 현실을 감안할 때 신문사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없는 한 올바른 광고 문화 정착은 어렵다는 것이다.

조전근 교수는 “광고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올바른 구매결정에 정보 제공을 하고 있는 만큼 광고도 기사처럼 언론사가 사실 확인의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라며 “타의에 의한 규제보다 신문사 광고인들이 내부에서부터 자율적인 규제를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풀려진 광고, 기사같은 광고의 정확성 대신 기사식 광고의 쏠쏠한 재미에 길들여진 우리 신문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