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처럼 97년 입사자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입사 이후 바로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가 시작됐고, 그래서 적지 않은 언론사가 98년 신입사원 공채를 포기했기 때문에 막내 생활을 2년이나 했다는 것이다.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문화방송의 이주훈 기자도 바로 97년 입사자다. 이 기자는 97년 한국일보에 입사했으며 최근 문화방송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기자와 나는 함께 경찰기자 생활을 2년 넘게 하면서 ‘막내답게’ 거의 모든 사건 사고 현장에서 말진으로 조우했다. 연평 해전, 민영미 씨 속초 귀항, 인천호프집 화재, 화성 씨랜드 화재 등 거의 모든 현장에서 우리는 만났고 함께 굴렀다.
사고가 터졌다 하면 습관처럼 서로 전화를 했다. “너도 가냐?” “물론이지. 너도 올거지? 현장에서 보자”며 무슨 동창회 모임 하듯 현장에서 만났다. 요즘 경찰 기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을 빌면 전형적인 ‘하리꼬머’(하리꼬미에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er’을 붙인 말)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기자는 경찰기자 답지 않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차분하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늘 차분히 행동했다. 험악한 고성이 오가는 현장에서도 소리 한번 지르는 법이 없었고, 그렇게 오랫동안 말진으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도 싫은 내색은 거의 하지 않았다. 자기가 일 많이 했다고 생색내는 법도 없었으며 ‘잘난 척’이라는 단어와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
이 기자는 나같은 타사 97년 동기들에게도 그 따뜻함을 잃지 않아서 ‘2년 동안 막내’였던 불행한 동기들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남이 잘되면 정말 좋아해 줬고 힘들어하는 동기들이 있으면 친형처럼 이런 저런 상담도 많이 해 줬다. 풀을 해줄 때도 그 자상함을 잃지 않아서 기사로 깔끔히 정리를 한 뒤 완벽한 상태를 베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동기들이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지난해 연말 이 기자는 나에게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를 해 “문화방송으로 회사를 옮겼어. 앞으로 많이 힘들어 질 것 같아”라고 말했다. 사실 그야 적지 않게 긴장되겠지만 이 기자를 좋아하는 많은 동기들 입장에서는 그의 따뜻한 모습을 화면으로나마 한 번 더 볼 수 있게 됐으니 좋은 일이다. 그의 새 직장생활에 행복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