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億臺) 연봉의 신문기자가 탄생한 시대다. 언론인으로서 한번쯤 군침 삼킬 만한 액수고, 또 그에 걸맞은 고급기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싶어진다. ‘억대 고급 전문기자’는 양질에 따른 보수를 뒷받침한다는 것 이상으로 언론사회, 특히 신문제작에 던져주는 의미가 깊다.
앞으로 신문제작 방향은 단순한 취재 위주의 기사에서 탈피해 보다 심도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심층·기획보도는 물론 쟁점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과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일부 신문의 전문기자(대기자) 칼럼과 해설이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신문은 방송과는 달리 인쇄매체로써 전문보도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를 십분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신문 독자들의 알권리 충족에 부응하는 길이다. 각 사에서 전문기자 양성을 위해 갖은 지혜를 짜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어쨌든 억대 기자 탄생으로 신문의 새 장을 연 셈이다.
그러면 억자(億字) 기자는 없을까. 억자를 쓰는 기자는 없어도, 억자를 다듬는 기자는 있다. 교열기자다. 기자생활 30년을 한다 치자. 30년간 억자를 쓰려면 하루 1만자 정도 기사를 써야 한다. 보통 1개면(광고 5단)에 4,000∼5,000자가 실린다. 취재기자가 하루 최소 2.5개면의 분량을 30년 동안 계속 적어야 비로소 억자를 쓰게 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교열기자는 가능하다. 물론 쓰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지만, 억개의 글자를 일일이 살펴 다듬는 억자 교열기자 탄생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대략 30년 전후가 된다.
여기서 억자 기자의 애환을 들추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교열 이야기다. 흔히 언어 파수꾼이라 불리는 교열자는 언론사회에서 푸대접을 받아 왔다. 왜 그런가. 우리 말글 소외현상 때문이다. 글쓴이를 탓하면 뭐하랴. 맞춤법 틀리는 걸 예사로 생각해온 풍토에 무얼 기대하겠는가. 하지만 교열기자는 글자 한 자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잘못된 문장을 바로잡으려고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한다.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 생동하는 말글을 만들어 가기 위해 가시밭길도 마다치 않는 게 교열기자다.
개인적으로 축구선수 홍명보를 존경한다. 수비를 맡으면서 공격까지 가담해 끝내 골을 터트렸다. 수비수로서 공격에 일익을 담당했기에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편집국 최후의 보루인 교열기자도 말글 지킴이로만 안주해서는 안된다. 말글 수비와 전진을 병행해야한다. 보는 교열자에서 쓰는 기자로 거듭나야 한다. 말글을 지키기 위해서 써야 하는 것이다. 교열기자는 잘된 글을, 올바른 글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 혼란상 시대엔 더욱 그렇다. 말글을 살리는 지름길이 따로 없다.
오늘도 병든 말글을 치유하기 위해 무진장 애쓰는 교열기자다. 노력한 만큼 억자 기자의 고지도 가까워지고, 억대 기자 대우를 받을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억자 교열기자를 꿈꾸며, 억자 기자의 억대 기자 탄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