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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자실은]청와대

여느 출입처와 비슷한 풍경...영락없는 '기자실'

호준석  2001.01.15 1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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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의 아침은 여느 출입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석간과 방송, 통신기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나와 배달판 신문을 체크하고 전화통을 돌리다 보면 9시 가까이 돼서 조간기자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한다. 9시반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공보수석님 오세요’하는 여직원의 목소리가 작취미성인 일부 기자들의 단잠을 깨우고 곧이어 박준영 공보수석이 한번도 바뀌지 않는 특유의 점잖은 말투로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하며 아침 브리핑을 시작한다.

작년 이맘때 필자가 7년차라는 구상유취(口常乳臭)한 연조로 청와대 기자실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의 느낌은 엄숙한 긴장감 같은 것이었다.

쟁쟁한 대선배들이 모여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들이 결정되는 최고 권력기관을 취재하는 곳. 왠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같은 곳. 그리고 이제 출입한지 1년이 다 돼가는 지금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역시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하는 것이다. 다른 출입처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런저런 해프닝들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남들 눈에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며 기자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이 대체로 여기서도 재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기자실은 역시 내가 경험해본 출입처들 가운데 가장 점잖고 품위있는 곳임에 분명하다.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정당을 함께 오래 출입하면서 서로의 장단점과 인간적인 면모까지 알만큼 아는 사이이다. 연조도 대부분 차장급이나 부장급이고 1단 짜리 기사를 가지고 얼굴 붉혀야 할 일도 거의 없다 자연히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리잡게 된다. 게다가 출입기간도 다른 출입처들보다 긴 편이고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는 서로 룸메이트가 되기도 하고 며칠씩 밤낮을 같이 보내야 하는 사이들이다 보니 서로 가까와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출입처를 옮기게 되면 식구 중의 하나를 보내는 것처럼 아쉬워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서라도 꼭 환송의 자리를 마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청와대 기자실에 이렇게 화기애애한 친목의 분위기만 감도는 것은 아니다. 1단 짜리 물먹을 일은 없지만 어쩌다 물을 먹으면 대부분 1면 톱이라는게 문제다. 자정이건 새벽이건 수석과 해당 비서관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기사가 맞는지 확인해야 되고 만약 맞다면 물먹은 기자들이 느껴야 하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는다른 출입처들과는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최근 중앙일보가 보도한 안기부 자금을 받은 의원명단 출처가 청와대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면서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와졌던 게 한 예이다. 취재경쟁은 특히 개각같이 큰 일이 있을 때 불을 뿜는다. 사람 맞추기 경쟁이 바람직한가는 논외로 하고 기자들은 소속사의 자존심을 걸고 각자의 취재원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며칠간 치열한 사람 맞추기 경쟁을 벌인다. 최근 개각 때는 과당경쟁을 지양하자는 취지에서 심야에 기자들이 한 음식점에 모여 서로가 단독취재 활동을 벌이지 못하도록 상호감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다.

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은 1층에 중앙기자실, 지방기자실, 그리고 TV 카메라 기자실과 소회견실이 있고 2층에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하는 대회견실과 구내식당이 있다. 현재 중앙기자실에는 신문이 각사 1명, 방송과 통신은 2명씩 모두 30명이 출입하고 있고 지방기자실은 22명이다. 비서실 취재는 오전과 오후 각 1시간씩 시간을 정해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그리고 비서관과 행정관들을 만날 수 있게 돼있다.

보통 오전에는 떼 마와리, 오후에는 나홀로 마와리 형태로 취재가 이뤄진다. 모르는 사람들은 청와대 출입기자라면 대통령과 가끔 마주 앉아 맞담배도 피워가면서 국사를 토론하는 줄 알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통령 얼굴 보기는 쉽지 않다. 기자회견이나 간담회가 있을 때, 그리고 2명씩 돌아가는 풀기자로 대통령 행사취재할 때밖에는 기회가 없다. 또 잘 모르는 사람은 풀기자만 취재를 하면 시각이 왜곡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걱정을 하는데 완성된 기사를 풀하는게 아니라 대통령의 발언내용 전체와 현장 분위기 등 취재한 소스를 통째로 풀하고 기사는 이를 바탕으로 각자 쓰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기우이다.

기자들은 출입처를 경험하는만큼 시야가 넓어진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는 한번 출입해 볼만한 보람이 있는 곳이다. 기자는 청와대에 출입하면서 전혀 문외한이던 경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의 폭을 갖게 됐고 세계화가 왜 중요한 것이며 우리나라가 국제체제 속에서 갖는 위치가 어떤 것인지도 눈을 뜨게 됐다. 반면 출입처와의 일체감이 상대적으로 높고 취재원들의 논리가 무게있게 다가올 가능성이 많은만큼 자칫 경도된 시각을 갖게 될 위험도 없지 않은 곳이다. 종합적으로 듣고 균형있게 판단하려는 노력이 청와대기자들의 숙제가 아닌가 한다.

호준석 YTN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