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4시 서울지방법원 562호실. 롯데호텔 노조원 403명의 고소에 따라 지난해 파업 해산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 혐의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증언을 한 사람은 한원상 YTN 영상취재부 기자. 이 날 한 기자는 증언과 함께 진압 현장을 촬영한 30분 짜리 비디오테이프 3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에서 폭력진압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된 부분은 ▷구타 사실 ▷경찰의 쇠파이프 소지 유무 ▷섬광탄 사용 여부 등이었다. 한 기자가 제출한 테이프에는 쇠파이프를 든 경찰의 모습, 섬광탄 터지는 소리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YTN에서 2분 30여 초 정도로 편집돼 보도된 이외에 노조원을 구타하는 10여 명의 경찰들도 함께 찍혔다.
한 기자의 이 녹화테이프는 “화질이 좋지 않다”며 당시 36·37층의 CC-TV 녹화테이프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경찰 측의 입장을 무색케 했다.
한원상 기자는 “호텔 36층까지 걸어 올라가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를 한 것은 사태의 진실을 보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측 변론을 맡은 김진 변호사는 “양쪽의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곤란을 겪었는데 제 3자가 증거물을 냈다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원상 기자의 보도가 재판 증거물로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7일 일본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 한 기자의 종군 위안부 취재는 이 재판에서 증거 자료로 채택되었다.
한 기자의 취재 성과는 종군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던 박영심(79) 할머니의 육성을 최초로 담아냈다는 것. 박영심 할머니는 역사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임신한 위안부’ 사진의 주인공이다. 북한 남포에 살고 있는 박영심 할머니는 남과 북이 공동 기소장을 낸 국제 전범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증언을 하지 못했다.
재판정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박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한 많은 세월을 증언하는 이 짧은 몸짓 대신 재판정에 마련된 스크린에는 한 기자의 인터뷰 화면이 비춰졌다. 박 할머니는 늙고 지친 몸과 마음속에 새겨진 채 60년간 지울 수 없었던 상처를 인터뷰에서 고스란히 증언했다. 한 기자의 보도는 일본군의 가해자들의 증언까지 최초로 담아내 일본군의 만행을 낱낱이 알렸다.
60년 전 일본의만행과 5개월 전 경찰 폭력의 진실. 세월의 더께는 다르지만 진실을 쫓는 한 기자의 카메라는 바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