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종로경찰서를 출입하던 지난해 기자실 아침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렸다. 그 선배가 아직 그 곳에 출입하고 있는 이상 지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끄러운 아침. 대형 사건사고가 드문 종로의 경우 아침이 소란한 이유는 대부분 한가지 이유다. K사 모 선배가 제 때 맨정신으로 출근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경상도 억양인 그 선배의 목소리는 늘 정상보다 한 두 단계 높아 옆에 있으면 취재원이나 캡과의 통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선배는 남이 떠드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조용한 아침도 있다. 십중팔구 기자실 한 구석 구들장 위에 40도 짜리 알코올로 처리된 선배의 육신이 안치돼 있는 날이다. 아니면 아예 출근이 불가능했거나. 결론적으로 종로기자실 아침은 선배의 생활 습관상 조용한 날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어쩌다 밤새 술 마신 그 선배가 기자실로 바로 출근해 미처 잠들지 않았을 때 상황은 최악이 된다.
이 정도면 경향신문 지정용 선배에 대한 설명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사실 선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렇게 방자할 수 있는 이유는 '성역없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직업정신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선배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선배는 큰 목소리만큼 취재력도 발군이다. 적어도 본인 주장(?)에 따르면 말이다. 최근 경실련 공기업후원금 파동에서부터 98년 강남고액과외 서울대 총장연루 사건까지. 스트레이트라면 발군인 경향신문에서도 지선배는 항상 굵직한 사건의 한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선배를 정말 좋은 선배라고 느끼게 된 계기는 후배 수습기자들에 대한 모습에서였다. 선배는 지난해 일진기자가 부족해 대여섯명의 수습에게 전화 보고를 받으면서도 귀찮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물론 수습들에게는 서슬퍼런 태도였지만 전화를 끊은 뒤 타사기자들에게는 늘 후배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바에야 고생하는 수습들에게 직접 따스한 말이나 한번 해주지 하고 생각하다가 곧 '지선배 성격상 그것이 나름대로 사랑과 신뢰의 표현이구나'하는 것을 깨달았다.
지선배는 아마 지금도 후배들에게 그리 따스한 선배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독기어린 구박만 받았지만, 그런 지선배가 넉넉하게 보이는 이유를 선배를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