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온정에서 우러나는 참맛 일품
진수성찬도 밥맛이 으뜸이다. 간판하나 덩그라니, 언뜻 보기에도 초라해 보이는 나만의 단골집. 아니 회사동료 모두의 단골집이 맞을 성싶다. 신문사 옆 팔달로를 가로질러 전주주유소 옆에 다소곳이 들어앉은 ‘솥뚜껑 생구이’ 집.
언제나 막 해놓아 김이 모락모락,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밥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고 했던가. 거기다 두 아주머니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도 밥맛을 돋우는데 한 몫을 한다. 김치찌개를 달라고 했는데 느닷없이 옛날 까만 솥뚜껑을 떡 내놓지 않은가. 삼겹살을 먹으라는 가보다. 솥뚜껑 마냥 투박한 아주머니. 아주머니 손등만큼이나 도톰한 삼겹살을 싸하게 달구어진 솥뚜껑에 올려놓으신다. 상추니 고추, 버섯을 덥석덥석 집어주시는 인심에 못이긴 척 아주머니의 넉살에 지고 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뭘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있던가. 당연히 수제비를 먹으러 가야지. 도청 후문 동부화재 맞은편 ‘토방회관’. 이 곳 다슬기 수제비 아니 다슬기 탕 맛이 끝내준다. 푸른색의 쌉쌀한 국물 맛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거기다 신 김치를 넣어 먹으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쌉쌀할 맛과 신맛이 무슨 조화냐고 하겠지만 직접 먹어 보지 않고는 도저히 그 맛을 이해하기 힘들다.
수제비를 다 먹고 얼얼해진 혀를 달래주는 건 계피향이 그윽한 수정과다. 이틀에 한번씩 큰솥에 수정과를 만드시느라 아주머니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토방에 가서 수정과를 안마시고 나오면 하루종일 무언가가 그리워지겠지.
우리 신문사에서 전동성당 가는 방향으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김치맛이 일품인 집이 있다. ‘정원회관’. 그 곳에 가면 한상에 나오는 김치의 가지수가 엄청나다. 배추김치만 해도 지난해 김장김치 묵혀놓은 것, 막 버무린 겉절이, 젓갈 냄새가 나고 적당히 익혀진 것. 거기다가 빠알간 총각김치, 국물이 너무 시원해 해장으로 으뜸인 동치미, 약간 쌉쌀한 고들빼기, 푹 익은 갓김치와 파김치, 큼직큼직 썰어놓아 몇 번에 걸쳐 베어먹어야 다 먹을 수 있는 무김치.
펄펄 끓는 누룽지에 이 김치들을 척척 걸쳐먹으면 어느새 그릇들은 깨끗해진다.
아침밥을 굶고 나왔는데 점심도 건너뛰게 됐을 때.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이 간절해진다. 야들야들한 불고기도 먹고싶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조기도먹고싶다. 밥이 쩍쩍 붙는 간장게장, 짭짤한 갈치속젓, 새콤한 초장에 찍어먹는 데친 오징어, 걸쭉한 토란탕, 도톰하고 썰어진 무가 성큼성큼 씹히는 고등어조림, 새우젓을 곁들인 수육. 고사리와 시금치, 숙주나물, 콩나물, 도라지 나물을 빨간 고추장과 팍팍 비벼 먹어도 밥 한 공기쯤은 거뜬하겠지. 거기다 걸쭉한 청국장 국물. 그럴 때 딱인 곳이 있다. 도청에서 김제방향으로 한 블록을 가면 제법 고전적인 집이 있다. ‘죽림집’.
시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그대로 이어받아 2대에 걸쳐 음식맛을 이어온 집이다. 고집스럽게 채소며 생선이며 모든 재료를 재래시장서 직접 가져와 일일이 다듬고 씻으시니 정성이 두 배. 당연히 맛도 두 배다.
밖에서 두끼를 해결해야 하니 끼니 때마다 고민이 여간 아니다. 김치찌개를 먹을까 된장찌개, 순두부찌개를 먹을까. 그러다 결국 가는 곳은 중국집. 도청과 경찰청을 지나 우회전하면 바로 ‘대보장’이란 중국집이 있다.
80년대 아니 70년대라고 해도 별 손색을 없을 성싶다. ‘은실이’란 드라마가 있었는데 아마 거기서 나오는 중국집 같은 분위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툰 말솜씨로 반기시는 어르신이 계신다. 아들, 며느리 모두 중국 본토 분들이시다.
주로 자장면, 짬뽕을 먹지만 가끔 부추잡채, 깐새우, 유산슬 같은 요리를 시킨다. 그럴 땐 항상 이렇게 먹어보라고 비밀 아닌 비밀을 털어놓으신다.
그래도 내가 꼭 이 집을 찾는 이유. 가끔 해주시는 맛탕은 달지 않으면서 바삭바삭. 벌써 입에 침이 고인다. 내가 이 집을 찾는 또 다른 이유. 지금 생각해 보니 대보장 아주머니의 예쁘게 살짝 들어간 보조개 때문. 항상 웃는 얼굴로 한가지씩 중국사람들 먹거리를 알려주시는 아주머니 미소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앞에서 말한 나의 맛집 아주머니들은 하나같이 다 큰손. 그리고 따끈한 밥보다 더 따끈한 삶의 맛을 주시는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