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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여성부 출범에 부쳐

권태선  2001.02.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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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한겨레 교육공동체 부장



최근 한달 가량 프랑스인 친구가 우리 집에 머물렀다. 어느 날 이 친구, 정색을 하고 한국여성의 지위에 대해 알고 싶단다. 아이들을 중·고등학교에 다니도록 키우면서 밤늦게까지 근무해야 하는 신문사에 다니려면 많은 희생을 감내했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렇다. 기자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참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다. 그 희생은 물론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희생을 치룬 것은 아이들일테고, 아이들 돌보느라 편한 시간 한번 못 가져보신 시어머니께서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할 듯 싶다. 오죽하면 딸아이가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선언할까?

그러나 이런 정도는 우리 세대의 직장여성이라면 누구나 다 겪은 일이다. 문제는 일하는 여성들의 상황이 수십년동안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아이를 키우던 때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후배 여기자들은 아직도 마음 놓고 아이 맡길 데가 없어 쩔쩔 매고 있다. 이런 현실이 대졸 공채 대기업 여성사원 가운데 10년 이상 근속자 비율이 3%에 지나지 않았다는 조사결과의 배경일 것이다.

이런 설명에 프랑스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소득에 따라 보육비를 차등으로 내는 프랑스의 값싼 종일 탁아제도를 예로 들며 사회가 여성인력을 필요로 하면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우리 정부가 29일 여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를 발족시킨 것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 이라는 말로 그 곤혹스런 자리를 모면했다. 여성부 출범은 이 땅의 여성들에겐 매우 고무적인 소식인 동시에 씁쓸한 소식이다. 정부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시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점에선 고무적이지만 역으로 그만큼 뿌리깊은 성차별의 존재를 웅변한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여성부 출범 다음날 한겨레에선 `한겨레여성회’가 꾸려졌다. 한겨레 여성들은 이 조직을 통해 진보적 언론을 자임하는 한겨레가 사내 여성문제에서도 진보적일 수 있도록 견인하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조직을 띄우면서 우리의 마음 한켠엔 역시 씁쓸한 느낌이 남았다. “어떻게 회사가 만들어진지 12년이 넘어서야 이런 조직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라는 한 후배의 질문은 “우리가 우리 신문 구성원들을 너무 신뢰했던 탓이겠지요”라는 자답으로 이어졌다. 진보를추구하는 조직에도 성적 불평등은 여전했고 흩어진 개인으로선 그런 불평등 시정이 역부족임을 뼈저리게 느낀 결과가 여성회 결성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명숙 초대 여성부 장관의 말을 빌 것도 없이 남녀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한 성을 소외시키거나 억압한 채 조직이나 사회가 건강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 여성부 출범을 계기로 남성 동지들이 양성 평등 사회를 이뤄나가는 데 힘을 합쳐주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