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제32회 한국기자상 수상소감

[지역취재보도 부문] 한국전 직후 양민학살 사건

한국기자상  2001.02.12 00:00:00

기사프린트

매일신문/이종태 전 매일신문 사회부 기자



지난해 2월쯤이었나. 필자는 자못 당당하게 ‘한국전 직후 경산 코발트광산 양민학살’ 기사에 대한 ‘이달의 기자상’ 수상소감을 바로 이 지면에 피력했었다. “기사는 ‘이야기’를 ‘사실’의 영역으로 길어 올리는 작업이다”라고. 그러나 지금은 철없는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작성했던 기사들이 ‘이야기를 사실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전혀 담보해내지 못했다고 자학할 의도는 없다.

사건의 뼈대는 한국전 발발 직후 한국 군경이 정치범과 보도연맹 관계자, 양민들을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 폐광산 수직갱도에 던져 넣어 떼죽음 시켰다는 것. 그러나 사건은 이후 50여년 동안 대구·경북지역의 대학가와 재야 운동권에 떠도는 괴담으로 머물렀다.

이야기가 사실로 승격한 계기는 매일신문이 피학살자들의 유골사진과 함께 게재한 첫 보도 이후 속보를 계속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이 지금까지도 사실로 승인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학살 현장엔 지금도 피학살자들의 유골이 수습되지 못한 채 굴러다니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하수인들이 자행한 범죄를 감추기 위해 피학살자들이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후의 권리인 공식적 사망확인까지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공신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국가가 ‘국민들이 부당하게 생명권을 침해당한 사건’을 부인하는데, 누가 감히 그 사건을 사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지난번 수상 소감문의 ‘이야기를 사실의 영역으로 길어 올린다’는 수사는 지나치게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사실로 길어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쟁취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