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민주화 세력, 노조운동 세력이 안고 있던 문제를 방송노조도 안고 있습니다. 정권과 금력의 압력이 거셌을 땐 과감히 나서 빛나는 투쟁을 벌였지만 스스로 무엇을 이루기 위해선 그만큼 싸우지 않았습니다. 방송노조가 내외의 압력에 대항해 방송개혁을 이루려면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강준만 교수는 14일 방송프로듀서연합회와 방송진흥원이 개최한 목요포럼 '언론권력과 방송개혁'에서 방송노조운동에 일침을 가했다. "우군의 입장에서 뼈아픈 고언을 드리더라도 소화해달라"는 전제와 함께. 강 교수는 우선 방송노조운동이 싸워야 할 적, 타깃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개혁적이라고 불리는 세력이 집권했을 때 권력의 어디를 어떻게 치고들어갈지 분석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MBC 민영화론에 대한 방송노조의 대응을 한 예로 들었다. MBC 민영화론은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라기보다는 강원룡 전 방송개혁위원장 등 전부터 민영화를 주장해온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정서적 음모'라는 것. 따라서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라고 주장하는 방송노조의 전략전술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 교수는 말했다. 강 교수는 "정권은 이미 방송을 장악하고 있으며 굳이 손에 피를 묻혀 방송개혁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며 "그러므로 방송인이 방송개혁에 대해 진정한 애정이 있다면 주도권을 찾아오라"고 주문했다.
강 교수는 또 "방송인 절대 다수가 방송개혁을 원하고 있지만 뉴스를 보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만들어진 '수동성의 미학'에 방송인도 물들어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가 말하는 '수동성의 미학'이란 이렇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엔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자기 일만 하는 소시민적 삶이 양심적으로 보였다.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 대해 뼈아픈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양심적으로 비굴하지 않게 살되 나서지 않겠다는 '수동성의 미학'이 생겼다.
강 교수는 또 "신문에 대한 노예근성이야말로 방송이 권력이나 기존 관행에 종족돼버린 수동성의 핵심", "방송개혁의 암적 존재이자 제1의 적은 신문"이라며 방송의 신문 견제를 강조했다. 신문이 방송의 공영성과 품위를 강조하다가 MBC 민영화를 지지하는 등 방송개혁에 대해 앞뒤 안 맞는 보도를 하는데도, 방송은 자기 프로그램을 통해지적하지못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신문이 제4의 권부로서의 방송을 견제하듯 방송이 신문을 견제하는 동등한 위상을 갖는 것부터가 '수동적' 문화를 바꾸는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방송인들의 '거대담론 집착증'을 꼬집었다. 강 교수는 "만약 지금 방송이 권력으로부터 100% 독립한다면 어떤 이념적 색깔, 정치적 성향, 도덕적 수준을 보일 것인가", "방송사 상층부에 노조의 도덕성이 얼마나 작용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방송개혁의 주체는 사람이지 법이 아니라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에서 벗어나 좀더 슬기롭고 현실적인 개혁안을 제시하라는 제언이다. 강 교수는 내부로부터의 조직 개혁, PD와 기자 각 직종의 자정 노력, 방송 프로그램을 통한 개혁 메시지 전달로서 개혁을 달성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방송노련의 박진해 사무처장은 "지난해 MBC, 특히 계열사 직원 3분의 1을 명예퇴직으로 떠나보냈고 노조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언론학계 등 외부 조언을 받아들여 지방사 광역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왜 강 교수마저 방송노조의 고군분투를 지원하는 외부세력이 되어주지 않는가"하고 반문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임상택 사무총장은 "사회 변화 속도보다 느리긴 하지만 5년, 10년 전과 비교해 방송이 상당히 달라졌다"며 "방송법이 통과되면 인적 청산 등의 문제가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방송 내부에서도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SBS '나이트라인' 앵커 박수택 차장은 "방송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나이트라인'부터 바꿔나가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