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노조 전임자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좀 지난, 그러니까 아직 수습 상태인 후배와 잠시 자리를 같이 했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일까, 후배가 먼저 화제를 꺼냈다. “김 선배, 요즘 광고 판매율이 아주 안 좋다면서요?”
푸웃! 하마터면 마시던 음료수를 뱉을 뻔했다. 내 반응이 뭘 뜻하는지 잘 모르는 듯 녀석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정말 진지하게 회사의 경영상태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온 답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짐작하는 그 것. “이 친구야. 당신은 지금 광고 판매율 걱정할 때가 아냐.” 그렇다. 아무리 회사가 어렵더라도 광고 판매율 걱정은 수습 기자의 몫이 아니다. 수습 기자는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취재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기사를 찾아낼까, 어떻게 하면 한 줄이라도 더 잘 쓸까를 걱정해야 한다.
굳이 수습이 아니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광고 판매율 걱정은 기자의 몫이 아니다. 기자는 기사에만 매달려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어 왔다. 하지만 후배를 돌려보낸 뒤 혼자 남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전날 저녁 뉴스의 시청률부터 뒤져본다. 저녁에 뉴스 모니터를 할 때도 요즘은 광고가 화제다. 어 또 광고가 떨어져 나갔네…. 경기 선행지수가 나빠졌다는 기사를 보면서, 광고시장에 다시 찬바람이 불겠군, 하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당연히 지갑이 얇아지겠다는 걱정으로 이어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기자들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돌이켜보니 변화가 시작된 것이 90년대 초반 같기도 하고 90년대 중반 같기도 하다. 분명한 건 IMF 사태를 겪은 뒤 확실히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 온 한 후배는 이런 현상을 ‘MBA 저널리즘’이라는 말로 풀이했다. 미국에서는 10년 전쯤 언론계의 화두라고 할만큼 논란이 됐다고 한다. 언론도 기업이며, 기업인 이상 경영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나온 말이 ‘MBA 저널리즘’이다. 그 결과 보도국(편집국)이 주요 결정을 내릴 때, 언론의 사명이나 의무감보다는 경영적인 사항을 최우선적으로 따진다는 것이다.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논리임은 분명하지만, 우리 언론계의 현실을 돌아보면 마냥 거부하기도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언론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지만, 결론이 쉽게 나올만한 사안도 아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괜히 씁쓸해져 ‘그래도 광고 판매율 걱정은 기자들의 몫이 아니다’며 공연히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하나 더. 당연히 받아야 할 세무조사에 대해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우기는 추악한 권력으로서의 언론보다는 차라리 ‘빠다 냄새 나는 MBA 저널리즘’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