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씨의 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경성(京城), 쇼우와 62년’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다는 가정하에서 씌어진 이른바 가상역사 소설이다. 만약 이 소설대로 1941년에 발발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을 이겼다면, 그래서 지금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상태라면?
이 책 ‘헨더슨 비행장-태평양전쟁의 갈림길’(지식산업사 펴냄)은 태평양전쟁을 총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전사(戰史)보고서다.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 일본군은 전력면에서 미군을 훨씬 압도해, 상식적으로 볼 때 일본군이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작은 섬 과달카날에서 미 해병대와 육군에게 지상전투에서 개전 후 처음으로 참패하게 된다.
헨더슨 비행장은 일본군이 먼저 과달카날을 점령한 후 만들었는데 곧 미군에게 빼앗기고 일본군은 이를 되찾기 위해 여섯 달에 걸쳐서 미군과 사투를 벌인다. 그 결과 헨더슨 비행장은 저자의 표현대로 ‘역사(歷史)를 바꿔놓은 역사(役事)를 이룩한 비행장’이 된다.
우리는 흔히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로 미드웨이 해전을 꼽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미드웨이 해전보다 헨더슨 비행장을 들고 있다.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군 수뇌부의 결정적인 판단착오로 단 5분만에 전세가 뒤집힌 세기의 대역전극이었다.
헨더슨 비행장의 이름은 미드웨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미 해병 항공대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대 로프톤 헨더슨 소령을 기리기 위해서 따온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 총사령관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중장은 헨더슨 비행대의 겁없는(dauntless) 공격에 놀라 공격대의 발진을 결정하지 못하고 늦추는데 이것이 결국 미군이 승리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저자는 20여년간을 솔로몬 지역에 근무하면서 당시 전쟁터 하나 하나를 직접 발로 뛰면서 수집한 전사를 바탕으로 책을 펴낸 것인데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갈수록 20년 공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