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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사장 내정 김중배 대표의 하루

김상철 기자  2001.02.24 02: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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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6시경 김중배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대표가 MBC 신임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면서 언론계 안팎의 반응은 먼저 ‘뜻밖의 소식’이라는 데 모아졌다. 아울러 방송민주화에 대한 기대와 환영의 표시가 뒤이었다.

“언론계의 대선배이자 언론개혁에 앞장서온 인물인 만큼 발전적인 역할을 수행해나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성유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의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 방송민주화와 각종 개혁과제를 김 대표가 전향적으로 풀어나가길 바란다”는 입장이 이같은 기대를 요약하고 있다.

물론 우려 섞인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MBC 내부나 정권과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역시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주동황 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시민언론운동 현장에서 외쳐오던 방송개혁을 공영방송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언론개혁을 둘러싼 정쟁이 한창인 정치권에서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던 인물이 정부에 의해 임명됐다는 식의 음모론이 제기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반응이 교차하던 시간, 김중배 대표는 오후 6시 40분경 코리아나호텔에서 방송문화진흥회 위원들과 만나 20여분간 추천경위, 내정과정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후 무교동 인근의 주점으로 향했다. 언론계 안팎의 기대와 우려를 이미 고스란히 인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김 대표는 발걸음으로 옮기면서도 내내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며 고민을 떨치지 못했다.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면서도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24일 오전 중으로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전격적인 사장 내정 통보에 대한 당혹함을 내비치며 “좀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는데 26일 주총이 예정돼있어 일정이 촉박하다”며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수시로 전화가 왔지만 “그동안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입장이었던 만큼 이번 일을 계기 삼아 실천의 자리로 나서야 한다”는 격려와 “김 대표가 몸담고 있는 시민언론단체의 공백이 너무 크다”는 만류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듯 했다.

김 대표는 공동대표로 있는 참여연대측에도 “논의를 해서 24일 새벽까지 연락을 달라. 여러 입장을 들어보고 오전까지 결정을 내리겠다”고 전했다.

23일 밤 9시가 넘어가던 시각, 시민언론단체 관계자들과 일선기자들이 속속 합류했다. 술잔은 거듭해서 바닥을 보였고 담뱃갑도 비워져갔다.

김 대표는 많은 저작을 통해 ‘언론의 죄인, 역사의 죄인’임을 책망하며 “그 회한으로 말미암아 불면의 밤은 이어진다. 그 참회와 속죄의 끝에서, 다시는 죄악과 해악의 시간이 되풀이되지 않는, 이 땅의 언론을 바로 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김 대표의 23일 밤은 어느 날보다도 긴 불면의 밤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