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이번 서한은 편집권 독립과 경영 투명성, 신문시장 정상화 측면에서 진일보한 조치라는 평가를 얻으면서 그 배경과 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먼저 편집위원회 구성은 족벌 언론의 폐해로 지적 받아 온 사주의 편집권 침해에 사주 스스로 견제 장치를 두었다는 데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 홍 회장이 ‘시작에 불과하다’며 밝힌 ABC 실사 수용 방침은 무가지 경쟁으로 얼룩져 온 판매시장의 낡은 관행을 털어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한국 신문시장의 판매 경쟁이 삼성을 모체로 출발한 지난 65년 중앙일보의 창간부터 본격화되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더욱 그렇다. 사내 인선위원회를 구성해 사외이사를 선임하겠다는 것은 경영 과정에서 사주의 입김으로 인한 폐단을 걷어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사외이사제는 편집권 독립과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운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단 ‘사주의 개인 영역’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두 분야의 독립과 투명성을 사주 스스로 보장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타 언론사에서는 홍 회장의 행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한편 그 배경으로 ‘국면전환용’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세무조사 등 일련의 상황이 현 정권의 대선 준비용이라는 판단을 했다면 97년 대선을 겪은 홍 회장도 뭔가 다른 대응을 모색하지 않았겠느냐는 것. 지난해 말 대통령과 면담 이후 사내 개혁과 열린 보수를 강조한 홍 회장의 신년사가 이같은 추측에 개연성을 더한다.
그러나 중앙일보측은 이같은 가능성을 전면 부인한다. 이장규 회장 비서실장겸 전략기획실장은 “편집위원회를 처음 들은 것이 작년 10월경”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편지가 전달된 이 날 오후 편집국 기자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얘기”라는 것이다. 오히려 1등 신문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하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홍 회장은 지난 해 종무식에서 98년 이후 처음으로 ‘2등 신문’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 편집국 기자에 따르면 홍 회장은 최근 노조와 함께 한 자리에서 당시 발언에 대해 “5년 이내에 내놓고 1등 신문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은 이 자리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자”며 “지금 2등으로 스스로 인정한다면 그 때 1등으로 공인받을 수도 있는 것아니냐”고 말했다는 것.
‘질적 경쟁’을 표방하며 언론개혁을 강조한 홍 회장의 이번 조치가 이같은 자신감과 함께 전체 언론개혁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