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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성유보 동아투위 위원장

"잃은 명예도, 회복할 명예도 없다"

박주선 기자  2001.02.24 02: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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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측면에서 해직은 날벼락이었죠. 인생 설계에 의한 것도 아니고. 감옥에서 간암을 얻은 선배, 고문으로 심장병을 얻고 숨진 선배…. 눈물나는 일도 많았고, 가족들이 겪은 핍박이야 소설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겁니다.”

1975년 3월 17일 새벽 유신 정권에 맞서 싸우다 회사에서 쫓겨난 동아일보·동아방송 기자 프로듀서 등 114명이 프레스센터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결성됐고 26년여만인 지난 19일 동아투위 활동이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됐다.

성유보 동아투위 위원장은 “한 마디로 기쁘죠. 우리 스스로야 그동안 떳떳했고 잃은 명예가 없어서 회복할 명예도 없지만 사회가 우리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공인한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라며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동아방송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자 정부는 광고탄압과 사주 개인비리 조사를 통해 동아일보를 압박했다.

“결국 75년 3월초에 회사가 사장과 주필을 바꾸고 ‘일체의 사내 집회와 성명을 금한다. 기사와 관계해 상급자에게 따지면 항명으로 보고 사규 위반자는 처벌하겠다’는 방을 부쳤어요. 기자들이 계속 규탄 집회를 벌이자 몇몇 기자를 해직하더군요.”

이에 대한 항의로 제작 거부 농성이 시작됐고 회사의 강제 축출로 기자들이 무더기 해직을 당했다.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가 동아투위의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공인하면서 명예회복 및 보상 등을 신청한 101명의 동아투위 위원들은 앞으로 개별심사를 거쳐 명예회복 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성 위원장은 “법적으로 보상금 규정이 사망자, 상이자 등에 국한되어 있어 동아투위 위원들은 생활지원금 형태로 보상을 받게 된다”며 “정부가 우리에게 위로될 수 있을 정도로 조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동아일보와의 관계도 해결돼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99년 말에 김병관 회장이 (동아투위 문제) 해결의 뜻을 전해와 두차례 만났으나 우리의 요구안에 대해 회사가 비공식적으로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어요. 그리고는 접촉이 없었죠.”

성 위원장은 “동아일보가 진정으로 거듭 나려면 동아투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