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파업현장-대우노동자 이유있는 항의

김 현 기자  2001.03.03 00:00:00

기사프린트

“실업 문제와 관련해 사회안전망이 허약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실업 대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한 것은 정리해고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의 산곡성당. 김일섭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은 한 방송사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750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인원이 해고된 대우차 사태를 두고 언론과 노조 사이에는 ‘선문답’이 오가고 있다. ‘정리해고’를 반대한다는 노조 간부에게 ‘실업대책’을 묻고 있는 것이다. 노조는 “기자들이 이미 정해진 ‘답’을 세워두고 상황을 정리해고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일섭 노조위원장은 만나자마자 대뜸 “언론에 할 말이 많다”며 입을 열었다.

“부평은 지금 전쟁 상황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돕니다. 경찰이 공장에 숨어있는 노조 간부를 적외선 탐지기로 찾는가 하면, 지하철에서 내리는 시민들을 역에 가둬두고 검문을 했습니다. 경찰복으로 변복한 군인이 파견됐다는 등, 전국 경찰의 1/3이 이 곳에 모였다는 등 소문도 여간 흉흉한 게 아니에요. 사상 최대의 정리해고자가 나오고 한 지역의 시민 전체가 공권력 횡포 아래 놓여 있다면 언론이 나서야 하는 일 아닙니까.”

부평역 1층 상가의 한 주인도 “집회가 있었던 20일과 24일엔 무장한 경찰들이 아예 역 밖으로 시민들을 못 나오게 했다”고 말한다. 그는 “그 날 이후로 사람들 통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지난 주말엔 평소 매상의 반도 못 올렸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부평의 산곡성당에서 만난 대우자동차 노조원들은 언론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과연 이 길 밖에 없었는지, 그걸 짚어주는 기사가 없습니다. 대우차는 무조건 팔려야 한다는 국민 정서와 싸우는 것이 더 힘들어요.”(박모씨, 엔진부)

기술연구소 시작2팀에 있는 김대영(가명)씨는 이번 사태를 ‘외로운 싸움’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너희는 왜 아직도 돌을 던지고 파업을 하냐’고 묻습니다. 공적 자금 어디다 쓰고 이 난리냐고 그래요. 회사에서 다 썼지, 우리가 썼습니까. 언론 보도는 왜 그걸 묻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언론에 대한 불만은 사용자측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획홍보팀의 조윤선 과장은 “20일 이후 공장에 들어와 개별 취재를 한 언론사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YTN과 SBS, 조선일보 기자가 취재를 다녀갔고사진기자들이 버스에 탄 채 10여분 정도 공장 외곽을 돈 것이 이후 취재의 전부라는 것.

사측이 가장 크게 항의한 것은 23일 조선일보 르포기사. ‘출근 직원 일손놓고 해고자는 빗속 농성’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를 사측 관계자는 “현장을 둘러보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상황이 아무리 나쁘다해도 사무직 직원들이 일손을 놓았다는 것은 악의적이라는 것이다.

홍보실에서 본 한 일간지 기사 스크랩에는 기사를 쓴 2명의 기자 이름과 함께 ‘출입 불가’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홍보실 관계자는 “‘이렇게 보도하려면 출입을 못하게 해야 한다’며 한 직원이 적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2년여의 긴 싸움을 겪고 있는 대우자동차 사람들. ‘전쟁’과 다름없는 경찰력의 횡포를 목도한 시민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언론의 침묵.

언론의 ‘좀 더 많은 모습’을 보고 난 그들은 이제 ‘더 많은 할 말’을 간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