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독자들은 물론 기자들에게도 낯선 ‘해안사구(海岸砂丘·Coastal Sand Dune)’.
지난해 11월초 서울대 지리학과 유근배교수와 자연생태사진가인 석동일씨로부터 충남 태안군의 안면도 해안사구 훼손실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사실 기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해변가에 모래언덕이 있다는 말도 처음 듣는데다 ‘설령 자그마한 모래언덕 하나가 훼손됐다 한들 무슨 기사거리가 되겠는가?’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석씨의 사무실을 찾아가 항공기 사진으로 본 안면도 해안사구는 자그마한 언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해안지형’이었다. 너비가 수백m에, 길이는 10여km가 넘어보였으며 울창한 해송림이 끝없이 이어져 얼핏 보기에도 훼손돼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유 교수 등과 함께 직접 현장을 찾았다. 해안사구 입구는 태안군이 도로개설을 위한 기초공사에 들어가 700여m의 해송림이 잘려져나갔고 황량한 모래바닥을 이미 드러내놓고 있었다.
충남도와 태안군이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에 들어가자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이평주 사무국장은 공사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육탄방어’에 들어갔지만 대전시에서도 승용차로 4시간 가량 걸리는 오지여서인지 지역언론들조차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사구보존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안면도의 사구는 정말 아름다왔다. 유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랑드지방의 사구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사구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구를 훼손할 경우 사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배후에 있는 농경지의 염수침해마저 우려된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 사구가 국토를 늘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곧바로 기사를 작성했지만 현장기자의 기대만큼 기사가 ‘먹히지는’ 못했다. 그만큼 ‘해안사구’는 우리에겐 ‘낯선’ 지형이었다. 그러나 기획취재팀 팀장인 김창희 차장과 국장단의 선견(先見)이 없었다면 기사는 완전히 찌그러들거나 독자들에게 선보일 기회마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기사가 나가면서 일부 지역주재 중앙지 기자들과 지역신문들이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논란이 가열되면서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고 전국의 해안사구 실태에 관한 조사와 보존대책을 내놓았다.뒤이어 방송들이 가세하면서 충남도는 본보가 나간지 3개월만에 결국 도로개설 계획을 전면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본보는 ‘안면도 해안사구를 살리자’는 주장에 불을 지핀 것에 불과하다. 안면도 사구의 보존결정이 최종적으로 내려지기까지는 20년 이상 해안사구를 연구해온 유 교수와 자연생태사진가 석동일씨, 지역환경단체와 인근주민 그리고 본보에 따라 가세해준 타 언론들의 힘이 매우 컸다. 다만 의미가 있다면 남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때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안면도 해안사구 보존을 위해 힘써 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