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안중근 의사 추모사업은 국민 성금 모금과 집행에 대한 언론사의 도덕 불감증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세계일보는 모금 당시 186회의 시리즈와 함께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스티커를 70만장이나 뿌렸다. 지면과 대외 사업으로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지만 사업 추진이 부진해 기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상태여서 결국 모금 당시의 사세 과시 효과 외에는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93년 재단이 설립돼 사업 8년째에 접어들었지만 모금 당시 약속한 사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아직 추진 중”이라거나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러나 재단의 재정 기반이 국민 성금이라는 점을 돌이켜보면 사전에 사업 타당성을 짚어보는 것은 물론,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조차 없는 언론사의 태도는 결국 국민을 무시한 언론사 이기주의라는 지적이다. 여순 재단의 기금은 모금 당시의 열기가 싸늘히 식은 채 8년째 재단 통장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사업 타당성 진단=세계일보의 안 의사 성역화 사업은 출발부터 삐그덕 거렸다. 세계일보는 92년 10월 29일 성금 모금을 알리는 사고에서 “안 의사의 유해가 잠들어있는 지역으로 밝혀진 옛 여순형무소 인근 대지 6만평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일보는 여순형무소 인근 부지를 매입한 적이 없다. 당시 공동묘지 부지를 50년 동안 조차(租借)하기로 여순인민정부와 의향서를 교환했을 뿐이다. 92년 10월 경 중국을 방문했던 전 세계일보 기자는 “박보희 사장 등이 땅을 빌리기로 여순 정부와 구두합의 했다”고 밝혔다.
더구나 이 곳에는 안 의사 유해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사업이 전면 백지화됐다. 사망 시기와 공동 묘지 설립 시기가 맞지 않기 때문. 국민 성금에 나서면서 이처럼 기본적인 사항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재단 관계자는 “역사를 전공했던 사람이 추진한 일이 아니어서 이같은 실수가 있었다”며 “당시 형무소 관계자가 근거 자료 없이 말한 것인데 관계자들이 이 말을 듣고 동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사업 타당성의 사전 진단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박귀언 재단 사무국장은 “사업 당시 중국은 외국 투자를 거의 조건없이 수용하는 분위기여서 기념관 건립과 관련, 지방정부와 특별한 약속은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소수 민족의 단결’을 우려해 소수 민족의 국가 유공자 숭배화 사업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안중근 숭모회측 관계자는 “외국에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사전에 실현 가능성을 짚어봤어야 했다”며 “또 도중에 사업이 잘 되지 않았다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지 무조건 기금을 갖고 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복 사업=출발이 잘못된 것은 안중근 숭모회측의 지적과도 궤를 같이 한다. 숭모회 관계자는 “성금이 탐나서 이런 말을 한다는 오해가 있을까 싶다”며 언급을 꺼리면서도 “안중근 성금 모금 때문에 피해가 많다”고 말한다. 숭모회가 설립된 것은 63년으로 여순 재단보다 30년 먼저 꾸려졌다.
국가유공자 기념 사업은 1인에 대해 1곳의 단체가 해 온 것이 관행이다. 숭모회측은 이 관행을 여순 재단이 깼다고 말한다. 세계일보가 대대적인 국민 성금을 벌이면서 변변한 모금 운동 한 번 못해봤다는 것. 더구나 당시 법인 등록의 주무 관청이 공보처여서 설립 당시 언론사 특혜 의혹까지 일었다. 이같은 반발에 부닥치자 세계일보측은 사업 영역을 해외로 국한하고 성금 모금 당시 내걸었던 ‘대한국인 안중근’의 이름을 재단 이름에 밝히지 못하고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이라는 이름에 그쳐야 했다.
숭모회측은 “해외 사업을 제대로 한다면 모르지만 지금까지 해 온 걸로는 실패한 사업”이라면서 “26일 문을 여는 여순 형무소 전시관 자료도 숭모회측에서 가져 간 것이 대부분이다”라며 중복 사업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기금 감독=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기금이 쓰이는 것은 일상적인 출장과 인건비, 학술대회 비용 등이 대부분이다. 여순 재단이 밝힌 지금까지의 성금 사용 내역은 ▷93년 이후 여직원 1명의 인건비에 매년 1000여만원 ▷2번의 국제 학술회의 개최에 5000여만원 ▷중국 출장비로 매년 2000여만 원 ▷중국에서 온 관계자들의 체재·교육비 매년 1000여만원 ▷98년 여순 감옥 정비사업에 1억원 기증 등이다. 이같은 일상 비용의 지출이 결국은 재단의 목적 사업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더라도 사업 성과가 미미한 상황에서 8년 동안의 지출은 결국 국민 돈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