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에 걸친 방송민주화 투쟁의 결실로 통합방송법이 지난 99년 12월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새로 출범한 방송위원회가 오는 13일로 1주년을 맞는다. 방송위는 종합유선방송위를 통합해 지상파 뿐 아니라 케이블TV, 위성방송 및 유사방송까지 하나의 법 체계로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으며, 문화관광부가 가지고 있던 방송인허가권을 이양 받고 방송정책을 수립하는 등 위상이 대단히 강화됐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방송위는 방송사 인사 및 방송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잡음과 혼선이 끊이지 않는 등 아직까지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방송위 독립성 훼손
방송위가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KBS 및 방문진, EBS 이사 선임 등 방송계 인사였다. 그러나 당시 인선작업이 방송위의 독자적인 판단보다 당정에서 먼저 흘러나와 밀실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MBC의 경우 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2명이 부적격 인사라며 교체를 요구했고, 몇달만에 이사 2명이 교체됐다.
방송인허가 업무와 관련해서는 신규 PP사업자와 강원민방 및 위성방송 사업자 등을 선정했으며 홈쇼핑채널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출범 초기 실시한 신규 PP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심사기준의 평가비중치를 변경하고 낮은 점수를 받은 넥스트미디어코퍼레이션(대표 조희준)의 연예정보 채널을 선정하는 등 공정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또 위성방송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단일컨소시엄 구성을 추진하면서 지분 조정에까지 개입하는 등 사업자들과의 마찰이 이어졌다.
방송 선정성 규제 못해
방송위의 위상 강화에도 불구하고 방송 선정성 문제는 지난 1년간 더욱 심화됐다. 지난해 8월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이 “장관직을 걸고라도 방송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추방하겠다”고 밝히자 방송위가 뒤늦게 방송3사 사장을 불러 자정결의를 하는 등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샀다. 특히 김정기 위원장과 방송위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방송사가 방송위 심의 결과 및 지적사항을 솜방망이로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표류하는 편성규약
통합방송법의 성과 가운데 하나가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취재 및 제작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공표해야 한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편성규약을 제정한 방송사는 노조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해 물의를 빚은 KBS가 유일하다. 이와관련 방송위는 지난 2일 각 방송사에 제정을 촉구하고 뚜렷한 지연사유가 없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는 처벌조항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법에 제정시한이 명시돼있지 않아 처벌조항 적용도 쉽지 않아 보인다.
통합방송법 재정비 필요
이같이 시행착오가 계속되면서 통합방송법은 출발초기부터 개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방송법 제27조 ‘방송의 기본 계획에 관한 문제는 방송위와 문화부가 합의해서 결정한다’는 부분과, 4가지 관련 합의사안을 규정한 시행령 20조 1항이다. 김정기 위원장 역시 지난해 8월 학술세미나에서 “합의를 협의로 바꿔야 한다”고 밝히는 등 제반문제는 방송위의 법적 위상이 모호하기 때문이라며 방송법 및 시행령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방송위가 ▷보도·교양·오락의 3분할 편성규제 폐지 ▷홈쇼핑채널의 의무전송 규정 폐지 ▷PP등록제 전환 관련 등록요건 등 미비한 법규정을 개선하기 위해 방송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이나 현재 3분할 편성규제 폐지와 관련 의견이 엇갈려 국무회의 통과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