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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4.19 이후 사이비.건달 기자 쏟아져 나와

이성춘 이사  2001.03.10 13: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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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수도 서울에 있는 각 부처·기관의 기자실중 대표적인 양대 기자실인 중앙청과 국회 기자실에는 두 김씨가 좌장으로 군임했다. 기자실의 ‘황제’라고도 불리웠던 두 김씨란 중앙청의 김동극, 국회의 김진학 기자로 모두 8·15 직후 언론계에 입문하여 이때는 나란히 합동통신 소속이었다(김진학 기자에 대해서는 나중에 소개).

당시 중앙청 기자실에는 김주묵(조선) 김자환(한국) 등 중견 기자들이 있었지만 김동극 기자(후일 경향신문 부사장·동양방송 사장)의 리더십과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그는 출입하는 후배·동료 기자들을 철저히 감싸고 도와줘서 중앙청에 새로 나오거나 떠나는 기자들은 빠짐없이 김 기자에게 인사를 했다.

물론 중앙청 근내의 관리들은 한결같이 어려워했다. 그에게는 여러가지 일화가 많았다. 김 기자가 국무회의 도중 어느 장관에게 전화를 걸면 해당 장관은 “김동극 기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잠깐 다녀오겠다”며 밖에 나와 깍듯이 전화를 받았고 이에 대해 어느 국무위원도 나무라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는 독특한 카리스마로 동료 기자들과 고위 관료들을 휘어잡았던 것이다.

1960년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린 4·19 학생혁명은 모든 분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이기붕 국회의장 일가의 자살, 이 대통령의 하야, 자유당의 몰락과 민주당의 득세, 혁신계의 본격적인 활동, 그리고 연일 각종 요구를 앞세워 거리를 누비는 데모의 물결들은 실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 박사가 하야하자 중앙청 서쪽 부속건물의 총리실에는 수석 국무위원인 허정 과도정부수반이 자리잡았다.

비록 새 민선정부 출범 때까지 3개월의 시한부 임시정부였지만 허정 수반은 대통령 권한대행도 겸하고 있어 헌정사상 총리직과 대통령직을 처음으로 겸하는 기록을 세웠다.

허 수반은 아이젠하워 대통령등 국가원수급 외빈은 경무대에서 맞았지만 웬만한 손님접견과 국무회의, 기자회견 등은 중앙청 부속건물에서 했다. 약간의 혁명과업 처리, 5대 민·참의 선거후 부속건물(총리실)의 주인은 우리나라 첫 내각책임제의 장면 총리로 바뀌었다.

장 총리의 비서실은 실장에 이홍열, 공보비서관에 송원영(전 경향신문 정치부장·신민당 총무), 비서에 박종률(전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됐다. 장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매주 각료들을 뒤에 배석시킨채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회의실이 국민학교 교실보다 작아 앞쪽의기자들이 손을 내밀면 장 총리에 닿을 정도였다.

기자단 구성원들과 분위기도 4·19 이후 달라졌다. 우선 고참들이 부장, 부국장이 되어 초년병들로 대체된데다 신문·통신 발행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중앙에만도 20여개의 신문·통신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월급을 받지 못하는 건달·사이비 기자들이 쏟아져나와 그 여파가 중앙청 기자실에까지 미쳤다.

30∼50대의 중장년 인사 30여명이 갖가지 이름의 언론사 명의로 중앙청 기자실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종래부터 출입했던 정통 기자들은 스스로 A팀, 정체불명의 신인기자들을 B팀이라고 불러 구분했다.

B팀은 A팀과 대화나 교분 등은 거의 나누지 않았고 총리회견 때도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들은 취재도 하지않고 수근거리며 몰려다녔다. 이들은 취재보다 기자증을 이용해 광고를 얻거나 고위 관리들의 뇌물수수 등 비리를 캐내어 은근한 협박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게 주업이었다.

B팀은 거의 전직 경찰관, 형사, 검찰 수사관, 서기 등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 중에는 주먹(어깨)들도 끼어있어 복도에서 A팀과 마주치면 은근히 인상을 써 겁을 주기도 했다.

장면 총리가 내각제의 실세 총리가 되자 좁은 부속건물은 각료, 정치인, 기자단, 청탁을 하려는 외부 손님들로 시장을 방불케 했고 ‘사람들’에게 질린 장 총리는 관저도 없기 때문에 반도호텔에 스위트룸을 빌려 제2의 총리실(?)로 활용했다.

1961년 5월 16일 일단의 정치군인들이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는 홍수 때 한강물처럼 철철 넘쳤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일거에 박살냈고 천하는 군복 입은 주체세력의 세상으로 돌변했다. 5월 16일 새벽 혜화동의 갈멜수녀원으로 피신했던 장면 총리는 3일만에 총리실에 나와 연행돼 온 각료들과 3분간의 고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내각 총사퇴를 의결했다.

안경을 벗은 초췌한 모습의 장 총리는 국무회의실 앞에서 내외신 기자들에게 “민주당 정부는 총퇴진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발표한 후 중앙청을 나섬으로써 부속건물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성춘 전 한국일보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