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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아사히와 산케이

박정훈 기자  2001.03.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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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일본의 굵직한 이념·역사 이슈가 대개 ‘아사히(朝日) 대 산케이(産經)’의 대립축으로 진행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 교과서 파동을 둘러싼 두 신문의 대결 구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노골적이다.

싸움은 산케이측이 집요하게 걸고 있다. 산케이는 2월 22일 이후 보름새 아사히 논조를 비난하는 1면 칼럼과 사설을 3회 게재했다. 기사·사설 속에서 아사히를 거명해 비판한 것은 셀 수도 없다. ‘동업자’ 비방은 비교적 자제하는 편인 일본 신문업계에서 “이례적 사태”(도쿄신문 해설)임이 분명하다.

아사히는 일본의 전후 리버럴리즘을 대표하는 권위지다. 50여년간 일본의 사상 공간을 지배해온 아사히에 보수 내셔널리즘의 깃발을 든 산케이가 도전하는 양상이 요 근래 줄곧 이어졌다. 즉 두 신문의 대립은 ‘리버럴 대 보수’의 구도인 동시에 ‘기성권위 대 신흥세력’의 승부이기도 한 셈이다.

아사히가 산케이의 공격을 못들은 척 무시하는 반면 산케이는 사생결단이라도 낼 듯한 자세인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도한 문제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산케이 계열의 출판사 ‘후쇼샤(扶桑社)’가 출판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교과서 문제에 관한 한 산케이는 일종의 ‘당사자’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90년대 중반 본격화된 우파의 역사 수정주의 운동을 사실상 주도한 것이 산케이였다. 산케이는 기존 역사 교과서를 비판하는 기획 시리즈 등을 통해 이른바 ‘자학(自虐)사관’ 시정 캠페인을 펼쳐왔고, 그것이 왜곡적 내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문제의 역사 교과서 출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게다가 산케이와 계열 월간지 ‘세이론(正論)’은 ‘역사교과서모임’ 멤버들에 상설적인 발언의 장을 제공해왔다. 산케이라는 매체가 없었다면 문제의 교과서가 탄생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덕분에 산케이는 리버럴 진영 지식인 2명에 의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 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산케이가 터무니없는 매체인 것은 절대 아니다. 직업인으로서 기자의 시각에서 볼 때 산케이는 프로가 만든다는 느낌을 강렬히 풍기는 개성있는 신문이다. 양비론을 거부하고 분명한 주장을 일관되게 견지하는 자세도 평가할만 하다. 다만 그 논조의 방향이 주변국으로서 찬성하기 힘들다는 얘기이다.

아사히와 산케이의 대립은 일본의 국익실현을 둘러싼 방법론의 차이이기도하다. 아사히가 국제사회와 조화를 이룬 ‘열린 국익’을 추구하는 반면, 산케이는 그들만의 ‘자주적 국익’에 비중을 두는 듯 하다.

교과서 파동은 이런 저널리즘 철학의 문제를 이면에 품은 채 착지점(검정결과 발표)을 향해 숨가쁘게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