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지키다 온 후배 기자가 말을 건네 온다. “오늘, 힘드셨죠?” 이 말을 듣던 선배기자는 제 힘든 것을 잊고서 안에서 기사를 받아준 자신을 오히려 격려하는 기자가 기특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선배 기자는 “그래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 밖에 전할 수 없다.
이번 정주영 전 회장의 영면을 계기로 기자들 사이에도 그에 대한 평가가 분분했다. 어쨌든 경제에 기여한 공로가 큰 것이 아니냐는 대세속에서도 정경유착이나 개발독재 등으로 얼룩진 과거까지도 미화돼서는 안된다는 한쪽의 입장이 소수이면서도 목소리 만큼은 높았다.
곁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기자는 “현대사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국에 그 양반에 대한 평가가 무슨 대수냐?” 한다.
정주영 전 회장의 빈소를 다녀간 사람이 30만명을 넘어섰다는 현대측의 주장보다는 연일 빈소에서 날아온 기사에선 대한민국의 유명인사는 죄다 다녀갔다는 쏟아지는 동정이 관심을 모았다. 그 가운데 속칭 ‘왕회장’의 정치적인 참여로 악연을 맺은 김영삼 전 대통령도 빈소를 찾아 기자들에게 왕회장에 대한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이 단연 화제였다. 그들이 누구인가? 한때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며 비난하던 사이가 아닌가. 지금 누가 그들의 화해에 관심을 두고 있나? 아니다. 그들만의 질긴 악연이든 인연이든 세간의 관심사에서 일찍 비켜나 있다.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보복성으로 비친 현대죽이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던 현대호가 현 정부 들어서 대북정책의 전령사로서 갖가지 특혜성 시비를 낳으며 끄덕없다가 이제 퍼펙트 스톰속에 헤매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의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다.
제프리 존스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현대전자에 대한 구제금융 같은 사례가 다시 일어난다면 방관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호에 대한 특혜성 시비가 불거질 소지에 대해 일침을 가한 그의 목소리가 언제 다시 높아질 지도 알 수 없다.
기자들을 포함해 지금 우리의 관심은 현 정부가 이제 현대사태를 어떻게 풀어갈 지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경제에 맡기겠다는 종전의 정부방침이 지켜질 지 여부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