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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켜며] 부음기사

박미영 기자  2001.04.07 02: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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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회생을 위해 1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구조조정하고 정부가 대출금 출자전환을 포함해 2조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지원한다는 보도를 보고 얼마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망소식을 다루었던 언론보도가 떠올랐다.

‘한국경제를 일으킨 대들보’ ‘현대 신화 일으킨 불도저’ ‘한국경제 거목’ 등 ‘죽은 자’에 대한 예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찬양일색’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성급한 것인가를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미당 서정주와 운보 김기창의 사망기사 역시 ‘찬양일색’이었다는 점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망보도와 다르지 않았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관훈저널 봄호에서 “미당과 운보는 각급학교 교과서에까지 이름과 작품을 올린 공인”이라며 “고인들의 정치적 과오를 역사적으로 정리하자는 것은 그들의 인간적 고뇌의 짐을 역사의 이름으로 함께 나누어지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언론이 이들의 친일행각에 대한 평가 없이 ‘미화’에만 급급한 것은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최근 언론계에서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대한 사망보도가 지나쳤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번 기회에 ‘사망기사의 보도관행’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고인에 대해 관대한 것이 국민정서이고 언론계 관행이라고는 하지만 논란이 되는 인물에 대한 평가만큼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