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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홍종철 공보부 장관, 기자실 '뉴스 메이커'로 군림

이성춘 이사  2001.04.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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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앙청 기자실 관할내의 기관장들 가운데 ‘3대 인물’로 정일권 국무총리, 이석제 총무처장관, 홍종철 공보부장관이 꼽혔다.

3인중 먼저 독특한 행동에 기자들과의 잦은 마찰로 많은 에피소드를 남긴 홍 장관에 관한 얘기부터 소개해야겠다. 평북 출신으로 8·15해방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육사에 진학한 그는 포병중령으로 쿠데타에 가담, 최고위원이 됐다. 최고회의시절 어느 통신사 기자가 인사하자 “뭐, 통신사라고? 우리집 전화가 고장났는데 고쳐달라”고 해서 두고두고 통신사 기자들의 ‘손볼 대상’ 1호로 지목되기도 했다.

강한 평안도 사투리, 바리톤의 걸걸한 목소리,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이자 호주가인 홍 장관은 일본의 고위사절단이 방한했을 때 청운각에서 양푼에 큰 병의 정종 한병을 따라 먼저 들이킨 다음 술을 돌리자 20여분도 안돼 일본인의 3분의 2가 피신하거나 ‘제발 살려달라’며 항복하고 말았다는 일화가 있다.

홍 장관은 기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아무때나 “이봐” “자네” “똑바로 하라우…” 등의 반말을 마구 하는데다가 총리실과 공보부에 관한 기사를 쓰면 “그게 기사야?” “쓸데 없는 짓 하지말라”고 거침없이 야단을 치거나 나무랐다. 기자들이 “왜 못쓰는가” “언론자유가 있지 않은가”라고 반박하면 “뭐야?”하면서 이내 흥분하며 싸울 듯한 반응을 보여 대부분 불쾌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면에서 성격이 고지식하고 순박한 면도 적지 않았다.

고집스럽기만한 그도 이따금 공보부가 정확한 언론보도로 꼼짝없이 궁지에 몰릴 때면 기자실로 달려와 “이봐 그거 어데서 취재했어? 날 좀 살려주라우” “거 그만 쓰고 살콰주구레”라며 저자세를 취했는데 그래서 ‘살콰주’는 자연스럽게 그의 별명 겸 트레이드마크가 됐던 것이다. 어쨌든 기자단과 ‘살콰주’간의 불편한 관계는 폭언소동으로 충돌, 폭발하고 말았다.

사건은 공보부 소속 유병하 행정주사의 수뢰혐의와 관련, 기자들이 검찰의 기소여부를 확인하러 장관실로 갔다가 회의도중 잠시 나온 홍 장관과 벌인 설전에서 빚어졌다.

(기자들)“도대체 어떤 부정사건인가?”

(홍 장관 흥분된 어조로)“금시초문이며 전혀 보고받은 바 없다. 부정이라면 써라. 자네들이 언제 내 허락을 받고 기사를 썼는가.”

“부하직원의 부정을 보고하지 않은 실무자도, 잘못을 보고받지 못한 장관도책임이있는 것 아니냐.”

“호래자식, 네가 뭣이길래 그런 말을 하는가. 네가 장관을 취조하는 거냐? 기사를 쓰던지 플래카드를 들고 나를 규탄하던지 마음대로 해봐라. 하나도 겁나는 것 없다…기자들이 근본자세가 되먹지 않았다.”

“장관이면 다냐?”

“뭐야…”

중앙청 기자단은 홍 장관의 폭언사실을 일제히 기사화하려 했으나 일부 언론은 공보부 간부들의 전화청탁으로 기사가 보도되지 않자 크게 반발했다. 기자단은 아울러 공한을 보내 폭언과 기사봉쇄는 기자들의 인격과 취재·편집권에 대한 침해라고 비난하고 시정을 촉구했으나 홍 장관은 침묵을 지켰다. 결국 기자협회는 이정석 보도자유분과위원장(KBS 보도국장·방송개발원 이사장 역임)을 단장으로 조사단을 구성, 진상조사에 나섰다.

근 20여일간의 대치상태는 홍 장관이 기자실에 나타나 ‘사과’가 아닌 ‘반성의 기회가 됐다’는 말로 해빙의 실마리가 잡혔다. ‘살콰주’는 “흥분 끝에 뱉은 욕 한마디가 이렇듯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줄 몰았다. 언론계 전체가 내게 집중포화를 퍼부었으니 언론장관의 생명은 여기서 끊어진 것이다. 평소 반말은 기자들을 친동생이나 자식같이 생각했기 때문이다”라며 사실상 고개를 숙였고 기자단도 이를 수용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

박정희 대통령과 윤보선 전 대통령이 두번째로 맞붙게되는 6대 대통령선거를 수개월 앞두고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거행된 국립극장 기공식이 끝난 후 홍 장관이 유쾌한 표정으로 기자단과 마주했다.

(홍 장관)“지방을 둘러보니 박 대통령 각하의 재선은 이미 기정사실화 됐더라. 오늘 무엇이든 물어보라.”

이때 동아방송(DBS)의 유병무 기자가 “어떤 질문을 해도 정말 화를 내지 않을 것인가”라고 묻자 ‘살콰주’는 “나는 한번 약속하면 지킨다. 걱정 말라”고 대답했다.

(유 기자)“오는 대선은 민심이 등을 돌려 여당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하다. 현 내각은 언제부터 야당에게 정권 인계작업을 본격화할 것인가?”

한순간 침묵이 흐르면서 담배만 뻑뻑 피워대는 ‘살콰주’의 표정은 울그락 불그락해졌다. 이어 ‘살콰주’는 유 기자를 향해 “이 두 손가락으로 네놈 새끼의 눈을 파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렀고 곧 폭발할 듯한 그의 흥분에 놀란 유 기자와 다른 기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뒷걸음질쳤다.

그런 홍 장관도 유 기자도 오래전에 작고했다.

<이성춘 전 한국일보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