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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정마담' 정일권 총리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유명

이성춘 이사  2001.04.14 11: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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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 소개한 홍종철 장관에 관한 얘기를 계기로 언론계 선·후배들로부터 여러통의 전화를 받았다. 우직하고 뚝심과 소신이 있는 인물이라는 긍정론과 언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언론장관이라는 부정론으로 엇갈렸다.

문화 부문이 통합되기 전이어서 공보관계는 별로 큼직한 것들은 없었지만 그는 자기부처에 관해 1단 기사만 나와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주 타임지를 들고 다녔는데 특히 기자들과 마주할 때는 타임지를 옆주머니에 꽂고 나왔고 이따금 대화가 뜨거워지면 갑자기 “자네들! 영어공부 좀 하라우. 타임지 정도는 읽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질책성 충고를 했다.

언젠가 중앙청 광장을 지나는데 장관차가 옆에 서더니 홍 장관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자네 또 무슨 기사를 쓰려고 하는가. 타임 좀 읽으라우” (필자)“장관은 일주일에 몇페이지나 읽는가” “나는 거의 다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아무튼 영어공부 안하면 장차 병신된다구…” 미안한 얘기지만 기자들은 그가 한주 동안 몇페이지는 커녕 단 2∼3개 문장도 읽지 않는 것으로 확신했다.

1966년 가을께 홍 장관은 기자들을 장원으로 초청했다. 이날따라 밝은 표정인 그는 30대 후반의 사람을 신임 보도과장이라며 소개했다.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얻은 수재라구. 특히 이 사람은 학창시절 권투를 한 적이 있어. 기자들 조심해야 할꺼야…”라며 득의만면의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부터 기자들은 공보부 간부들을 만나면 “홍 장관이 기자들에게 압박을 가하려고 권투선수 출신의 과장을 앉힌게 아니냐”고 따졌다.

당시 중앙청의 주인이자 인물은 정일권 국무총리.‘고무레 정’‘정마담’으로 불리던 그는 만군(滿軍)과 일본육사를 나와 8·15 직후 창군(創軍)에 참여, 6·25때 육·해·공군 총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터키 및 미국대사, 외무장관을 지냈고 나중에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을 역임함으로써 대통령을 빼놓고는 관운이 가장 좋은 인사로 알려졌다.

언제 어디서건 기자들과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짓는 정 총리는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 그런대로 답변은 하지만 정답은 거의 없었다. 청와대쪽을 의식한 몸조심이 역력했다. 대체로 뿌연 답변을 하는 ‘정마담’도 2∼3개월마다 열리는 국무총리 정례회견때는 사뭇 긴장했다.

1966년 말께 중앙청 회의실에서 전국무위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열린 회견에서김한수 기자(대한)등 5∼6명의 소장기자들이 나서서 “뇌물수수와 각종 관폐 등 공무원들의 부패가 날로 늘고 있는데 총리는 알고 있는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무원들이 벌써부터 금품제공과 향응 등 전국적인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총리는 언제까지 묵인할 것인가”라고 물었으나 ‘정마담’의 대답은 “금시초문이다” “알아보겠다”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정 총리가 총리로는 휴전후 처음으로 해군 구축함을 타고 백령도에 가는데 몇몇 기자들이 수행했다. 공군기지와 해병부대 등을 위문한 뒤 초등학교 강당에 관내 유지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가운데 “이 지역 출신인 공화당의 ○모 의원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년 선거때도 계속 밀어달라”고 당부한 것을 들어 필자는 “총리가 백령도까지 가서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기사를 썼다.

며칠뒤 중앙청 복도에서 필자와 마주친 정 총리는 “미스터 리가 별것도 아닌 것을 보도해 야당 의원들한테 혼났다”며 미소를 지었다. 1990년대 초 하와이 대학원에서 연수를 받고있던 필자는 말년에 암 투병으로 수척해진 정 전 총리를 그 곳 하와이에서 이따금 만나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깡마른 체구의 이석제 총무처장관은 빈틈없는 독일병정 스타일에 대학교수풍의 인상이었다. 군시절 독학으로 법률공부를 했다는 그는 최고회의 법사위원장으로 제3공화국 헌법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3층 그의 방에서는 매일 오전 출입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행정기구·공무원 제도의 개선방안에 관해 그의 해박한 이론이 펼쳐지고 기자들이 질문을 하는 세미나가 열렸는데, 총무처 기사거리는 고위공무원 상벌, 고위직 인사이동, 각 부처의 기구개편, 그리고 통일원의 신설여부 등이었다.

이 장관은 공무원들의 부정 등 갖가지 행태와 정부의 시정에 대해 신랄하게 꼬집었지만 자기 부처의 기사단속에는 철저했다. 그런 그에게 필자는 완벽한 1단짜리 특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총무처의 박모 차관이 모종의 사건으로 사임한 뒤 며칠째 후임 임명이 지연됐었다. 어느날 필자가 “힌트를 주어야 공정한 게임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자 이 장관은 “5∼6년전 우리 부처의 고위직을 지낸 청렴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언뜻 자유당 국무원 사무국장을 지낸 신두영씨(총무처장관·감사원장 역임)가 떠올랐고 인사국의 확인을 거쳐다음날 조간에 사진을 넣어 보도했는데 나중에 이 장관은 “이 기자, 아무래도 인사결제서류를 몰래 빼돌렸던 것 아닌가”라며 농담 아닌 굳은 표정으로 얘기해 필자를 약간 놀라게 했다.

<이성춘 전 한국일보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