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 3월 31일자 기사가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언론내 갈등이 법적공방으로 증폭되는 게 요즈음 추세다. 기자 개인간 소송으로까지 비화되고 형사고소사건에서는 이전투구의 모습까지 보인다.
민형사재판이든 언론중재사건이든 소송에 한 번 연루되면 개인 시간과 정력 낭비는 물론이고 언론인의 직업적 자부심에도 큰 상처를 입게 되며 동료 선후배는 원수 사이가 되고 만다. 나중에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거나, 이기나 지나 별반 의미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히 안타까운 일인바, 그 어떤 제도적 개선 대안은 없을까. 여기서 한 번쯤 ‘언론중재위원회 2000년 정기세미나’에서 제시된 ‘가칭 언론피해구제법’ 초안을 주목해 볼만하다.
위 방안을 보면 언론피해소송의 주요수단, 즉 손해배상청구, 정정보도청구 및 반론보도신청에 대하여 ‘언론중재위원회 필수적 조정전치주의’를 취함과 동시에 ‘본래적 의미의 중재신청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법원제소 전에 반드시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쳐가라는 뜻이며 당사자간에 합의신청되면 중재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이른바 옥상옥의 비효율성이나 획일성”을 지적하는 반대견해도 있을 수 있고, 현행 중재위원회 제도자체를 불신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무릇 언론소송이 일반시민에게 유력한 대항수단으로 환영받는 속사정 하나는 일반개인의 입장에서는 언론사나 언론인이 갖는 지면자체에 대한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보도내용에 반대되는 의견이나 표현욕구가 있어도 그것이 묵살되거나 왜곡되고 말기에 부득불 법정으로 찾아가 꿩대신 닭도 무방하다는 심정으로 민형사적 제재를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사간, 언론인간에는 일반 시민과는 달리 각자의 매체와 지면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내세워 상대방과 경쟁해볼 기회가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언론내 갈등이라면 우선은 상호비판속의 의견경쟁을 벌여보되 다음으로는 언론중재위원회 등에서 냉각절차로서의 조정기회를 가져보는 게 낫지 않을까. (언론중재위원회가 못마땅하다면 ‘자율협약에 근거한 신문윤리위원회 조정전치주의’도 가능하겠다.)
그렇지 않고 최근 빈발하는 정치인들 사이의 저질맞고소 사건처럼 전술적 차원에서 상대방의 비판을 봉쇄하고자 맞소송만을 능사로 여기면 결국에는 평생 철천지 원수로 살아가야할것이다. 덧붙이면 최근의 언론개혁의 한 방향, 예컨대 편집권 독립을 위한 소유지분 제한방식도 분명 큰 의미가 있지만 앞서 말한 언론피해구제법초안이나 다른 정간법 개정안 같은 것에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검사들이 자신들의 공무수행을 비판하는 기자들을 상대로 과잉방어혐의가 짙은 법적 쟁송을 벌이는 경우에 대해서도, 예컨대 “검사는 반론보도신청과 정정보도, 손해배상청구중에 택일적으로만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거나 “검사가 공무수행에 관련된 언론침해소송을 제기할 때는 (검사동일체원칙에 비추어) 검찰총장을 거쳐야한다”는 식으로 개정안을 낼 수 있겠다.(정간법 제16조 7항은 삭제해도 무방하다.)
지난 기사가 지적한대로 언론내 맞고소가 빈발하는 최근의 사태는 “상대방의 비판적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봉쇄 전술로서의 SLAPPS(Strategic
Lawsuits Against Public Partici
-pation)소송”을 보는 듯 하여 영 씁쓸하다. 모름지기 저널리스트는 ‘가차없는 상호비판을 주고받는 의견경쟁의 전사’라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