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씨가 올해초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두고 독설의 포문을 열기 시작하자 독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김대중 대통령을 반대하는 이들은 시원하다고 했지만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이렇게 막말을 할 수가 있느냐”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 표현의 조야함, 거기서 드러나는 그의 인식수준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는 듯했다. 하지만 기자 가운데는 아마도 놀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김영삼씨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들은 그의 그런 표현을 숱하게 보아왔다. 다만 있는 그대로 보도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이것은 비단 김영삼씨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어느 날 기자들이 우리나라 명사들의 발언을 토씨 하나도 고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 시작한다면 신문의 몰골은 참혹할 것이다. 그대로 옮기면 요령부득인 말이 한국의 ‘지도층’ 사이에는 너무도 횡행하고 있다. 그걸 말이 되게 고치는 일을 기자들은 관행처럼 계속 해오고 있다.
언론계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이것이 언론과 정, 관계 인사의 유착 때문이라고 쉽게 단언해버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비단 정치인이나 경제인, 관료 뿐 아니라 권력과는 거리가 있다할 문화계 인사나 여성계 인사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활동중인 어느 여성계 명사는 기자회견 때마다 “여러분이 여성이라서 더 잘 알테니 잘 알아서 써달라”는 말이 단골메뉴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문이 그의 코멘트를 창작해가면서 보도하곤 했다. 다른 분야 역시 과정은 비슷하리라고 본다. 논리가 튀거나 허술한 곳은 기자가, 그 막강한 논리로 채워준다.
똑같은 기자회견을 놓고 따옴표 안의 글이 신문마다 다른 것은 그게 대부분 기자의 창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그 창작품을 진짜 그 사람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기자가 아는 명사와 독자가 아는 명사 사이의 괴리는 말도 못하게 크다. 그리고 기자들은 그 괴리가 큰 사람을 ‘과포’(과대포장)라고 부르기만 할 뿐 이 관행을 수술할 생각은 않는다. 도대체 왜일까.
글깨나 다룬다는 기자들로서는 논리가 서지 않는 문장을 쓴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기자는 보도할 뿐 발언하지 않는다는 보도준칙 때문에(칼럼은 예외이지만) 누군가의 입을 빌어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습성화됐는지도 모르겠다. 있는그대로 쓰면 살아남을 명사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아니, 중요한 뉴스원인 명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뿐이더라도 이것 역시 기자가 정 관 재계와 유착했던 오랜 과거의 잔재이다. 만약 함량미달인 거물을 단칼에 날리는, 언론의 서슬푸름이 살아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옮기지 않는 행위는 오보이자 죄악이다. 또한 나 역시 이 죄악에 동참했음을 고백한다.
이제라도 한국 기자들은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명사들의 가면 벗기기부터 시작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