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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주장]

도덕적 파탄을 개탄함줄잇는 언론인 비리... 문제는 도덕성의 회복

편집국  2000.11.02 15: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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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사장 전매청장 담배인삼공사사장 KBS사장 한국관광공사사장.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화려한 직책들을 한 번씩 거친 사람이 있다. 홍두표. 그가 지금 구치소 담벼락 안에 갇혀있다. 한 재벌그룹회장에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KBS 사장으로 있던 때의 일이다. 돈을 준 명목중의 하나는 그룹비리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도해달라는 것. 홍두표씨는 대가성이 있는 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검찰은 그를 구속했다. 그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검찰은 정신이 나갔다.

길진현. 중앙일보 경제부 산업팀장. 그는 불구속입건 됐다. 동생은 구속기소. 미공개정보를 흘려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다.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던 그가 검찰조사를 받은 뒤 사표를 냈다. "처음에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군색한 변명과 함께. 부랴부랴 회사 징계위는 그의 해직을 결정했다.



이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름 뒤에 붙는 언론경력 때문이다. 이들의 행위가 개인의 단순한 일탈일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들은 언론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저버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참담한 건 이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자에게 자기자식을 현역입영 대상에서 빼돌리는 거간꾼 역할을 시킨 간부가 있다. 어느 '대기자'는 옛 안기부의 간첩단 수사기록 작성에 깊숙하게 개입했다. 직위를 이용해 돈을 빌려 주식투자를 하다가 부하직원 여럿 잡은 데스크와, 회사 돈을 굴리는 데스크까지 있다고 한다.



언론인의 윤리의식이 심각하게 망가져 있다는 얘기다. 근엄한 기사 뒤에 숨은 이 천박한 행태들. 이쯤되는 언론인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 '도덕적 파탄'지경 아닌가. 타락한 언론은 사회전체를 좀먹는다. 그들이 사회의 공기(公器)를 자처하는 데서 문제는 커진다. 취재정보를 이용해 수시로 시황을 체크하면서 정작 기사로는 투기로 한몫 챙긴 공무원을 질책할 때. 은근한 촌지도 거절못하면서 상납받는 경관들을 고발할 때 정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



언론의 자유로운 정보접근권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국민들이 알권리를 위해 위임한 권리다. 수집한 정보를 악용해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을 원격조종하라는 권리가 아니다. 회사자산이나 관리하라고, 기자들 돈벌이 하라고 준 권리가 아니다.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와 도둑질이 뭐가 다른가.허가를받았다는 것? 도둑 지키라고 집맡겨 놓았더니 세간살이 다 내다팔아 먹은 꼴 아닌가. 언론인은 이익집단의 유혹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언론을 믿어온 것은 도덕성을 때문임을 잊지 말 일이다.



우리는 언론인들에게 성직자 같은 순결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기를 바랄 뿐이다. 브로커나 장사아치가 되어 성실하게 일하는 대다수의 성실한 동료들을 욕보이지 않기 바랄 뿐이다.



언론사마다 뒤늦게 윤리강령을 꺼내 점검하고 강화할 모양이다. 그러나 선언적 의미의 강령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한 직업의식이다. 언제는 법이 없어서, 강령이 없어서 이런 낯뜨거운 일들이 일어났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