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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좁은 문

홍지영  2001.04.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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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배기 아들이 오늘은 엄마를 좀 봐주려는지 빨리 잠에 떨어졌다.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고 내일 조간 검색에 들어갔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 정치부 동료였다. 내일 아침에 개각 발표가 있다는 것이다. 서둘러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개각 취재가 쉬우랴? 입각 못하는 사람들만 확인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새벽 5시, 눈뜨자마자 다시 컴퓨터를 켰다. 밤새 새로 취재된 것은 없는지, 누굴 만나야 할지를 정리하고 김중권 민주당 대표 집으로 향해 간신히 출근길 차를 얻어 탔다. 측근들은 집에 찾아와서 들어간 경우도 별로 없다면서 생색을 낸다. 대부분의 취재원이 집에 찾아온 남자 기자들에게는 문전박대해도 여기자들에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또 동문회니 향우회니 해도 정당 기자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조직이 여기자 모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인의 여기자들에 대한 대우가 각별한 것도 사실이다. 희소성도 큰 무기다. 민주당을 출입하는 취재 기자만 해도 100명이 넘지만 이 가운데 여기자는 4명. 당연히 당직자들이 금방 기억을 한다. 심지어 기자들이 단체로 공통된 질문을 할 때 대표로 물어봐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만만치 않다. 가장 힘든 것이 술자리.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는 말을 가장 실감나게 하는 곳이 정치부 정당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당판에서는 밤새 이뤄지는 일이 많다. 자고 나오면 그 다음날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조간에 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무리해도 남자들과 똑같이 어울릴 수는 없다. 체력도 체력이거니와 나보다 더 마시고 들어올 기자 남편과 하루종일 눈 빠지게 엄마를 기다리는 천사 같은 아들이 있다는 것이 내 현실이니까.

어떻게 하면 취재원들과 자주 만날 수 있을까? 결론은 점심 시간. 취재원과 약속을 만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행사장에 갈 때나 출퇴근 때도 가능하면 취재원들의 차에 동승하려고 애써본다. 신문 기자들이 열심히 원고를 쓰고 있을 오후 3∼4시 무렵은 다리품을 팔기 좋은 시간이다. 같은 고등학교 못나오고 군대 얘기할 때 입다물어야 하는 죄로 술자리에 자주 못가는 대신 밝을 때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게으름 피우지 않으면 누가 이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닐까?

한국 언론의 역사는 백년을 넘었지만 아직정치부기자실은여기자들에게 ‘좁은 문’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SBS에서는 처음으로 그 좁은 문에 들어선 것 자체가 내게는 영광인 동시에 큰 짐이기도 하다. 내가 잘해야 다른 후배들이 내가 어렵게 간 길을 훨씬 수월하게 지날 수 있을 게 아닌가.

홍지영 SBS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