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은 그날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고도 말하지 못했고, 알고도 쓰지 못했다. 사실을 그대로 알리지 못하고 진실에 등 돌린 잘못에 대해 그날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과, 우리의 직무유기로 그날의 진상을 바로 알 수 없었던 독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 드린다.”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한 취재기자가 남긴 참회록을 한번 고쳐 써 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보고도 말하지 못하고 알고도 쓰지 못했다. 죽음으로 항거한 젊은이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제대로 사실을 알리지 못한 기자의 한 사람으로 광주 현장의 민주 시민들에게 사과의 말을 드린다.”
언제쯤 이런 사과문이나 사설을 우리 신문의 지면에서 만날 수 있을까? 새로운 세기 처음 맞는 5·18에도 우리 언론매체들은 그날의 침묵과 왜곡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말로는 스스로를 돌아본다고 하면서도 군부정권의 검열로 언론은 침묵해야 했다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5·18이 이 나라 민주화의 분수령으로 정당하게 자리매김 되기는 커녕 제대로 복원조차 되고 있지 않은 현실과 이 문제를 연관시킨다면 비약일까? 그날 계엄당국에 굴복한 언론은 그후 독재권력의 사슬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자본의 통제에 빠르게 길들여져갔다. 언론 내부의 자본에 장악된 언론인들은 지금 자사 이기주의의 수렁에 빠져 있거나 패배주의에 젖어 있다. 언론 외부의 자본은 광고를 무기로 한층 강고하게 언론의 목을 조르고 있다. IMF 체제를 낳은 외환위기 때 조기경보를 울리지 못한 언론은 기업들의 경제적인 통제로 여전히 환경 감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온 국민이 개혁의 진통을 겪고 있지만 언론은 사회 통합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이 촉발한 언론개혁을 둘러싸고 언론계는 갈라져 있고, ‘자본의 힘’의 최대 수혜자인 메이저 신문들은 정부가 개입한 ‘시장에 의한 개혁’을 언론 통제로 호도하고 있다.
언론개혁을 위한 논의는 실종돼 버리고, 언론판은 실정을 거듭하고 있는 정권에 대한 동조 매체와 비판 매체간의 대립구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법과 여론 같은 외부의 힘은 언론의 많은 악폐를 고칠 수 있지만 바람직한 언론의 행태는 언론매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실현 가능하다”는 허친스 보고서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이 역시 일면적 진리일 뿐이다.
언론의 본령에 대한 언론종사자들의 각성 없이 어떻게 자율적인 개혁이 가능한가?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겪은 현실이 이를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5·18을 제물로 삼은 6·10에 기대 자유를 되찾은 언론매체들은 1인칭으로 그날의 과오에 대해, 취재원으로서의 광주 사람들과 독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런 사과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언론 스스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언론매체들이 강자 앞에 무력하고 약자에게 무관심한 체질을 벗어 던지고 독립적인 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