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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중앙청`기자실`'약탈부대'`불명예

시장실에`'건너간다'`통고후

이성춘  2001.05.19 0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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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자루`가득`금품`챙겨와





1960년대 중앙청 기자실에 대한 약간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얘기들이 한 때 언론계를 떠돌던 일이 있었다.

하나는 중앙청은 10년을 출입해도 경천동지할 수준은 고사하고 웬만한 내용의 1면 톱기사 한번 제대로 쓸 수 없으며 고작 1∼3단 짜리나 가십 정도를 쓸 수 있는 곳이어서 오래 나가면 스케일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앙청 기자실이 ‘약탈부대’로 불리운 것이다. 얘기는 언젠가 기자들이 모여 환담하는 자리에서 “모모 기자실은 뭔가 윤기가 도는 모양인데 우리동네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농담삼아 불만을 토로하자 대표간사격인 Q신문의 C기자가 “그렇다면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한데서 비롯됐다. 다음날 C기자는 서울시장실에 전화를 걸어 “건너 가겠다”고 통고한 후 포대자루 2개를 든 D일보 S기자를 대동하고 나섰다. 쌀포대 사건은 얼마전 공보처 초청으로 방한한 버마(현 미안마) 언론인들이 포대를 들고 입국, 입관국 관리가 “웬 포대인가?”라고 묻자 버마인들이 “한국정부가 선물을 많이 준다고 해서 아예 포대를 들고왔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던 것이다.

C간사 일행은 근 3시간 만에 돌아왔고 기자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닥에 쏟아지는 내용물들을 주시했다. 다이어리, 각종 노트, 철 지난 달력, 당시로서는 귀중품인 볼펜, 각 단체의 기념 타월, 그리고 약간의 기자단 운영자금(현재의 20∼30여만원) 등이었다. “각자 고르라”는 C간사의 말이 떨어지자 기자들은 이것저것 몇가지씩 골라 챙겼다.

이처럼 간사들이 매년 1∼2차례 서울시청으로 원정(?)을 간 것은 5·16 쿠데타로 지방자치제가 폐지된 후 서울시의 예산집행 등 모든 행정을 국무총리실에서 감독·통제하고 있어서 서울시의 비리사건 등을 중앙청 기자들이 취재·보도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약탈부대’소문은 곧 가라앉았다.

중앙청 하면 청사앞의 광장에 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광장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일제가 패망한 8·15 직후에는 ‘한국해방 연합국 환영대회’등이 열렸고 한국이 독립한 후에는 ‘초대 정·부통령 취임식 겸 정부수립 기념식’이 열린 것을 비롯, 역대 정·부통령 취임식, 국경일 기념식, 각종 주요 기념식 등이 거행됐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1967년 7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두번째로 대통령에 당선,취임하는 제6대 대통령 취임식때 일이다. 중앙청 광장에 마련된 단상에는 험프리 미국 부통령, 사토 일본총리, 엄가금 자유중국 부총통 등 내외빈들이 참석한 반면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선거에 이어 3·15부정선거에 버금갈 정도로 불법부정이 극심했던 7대 국회의원 선거에 항의, 전원 불참했다.

오전 10시 사회자가 “지금부터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하겠습니다”라고 하자 멀리서 “지금부터 대통령 및 국회의원 부정선거 규탄대회를 거행하겠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양측의 국민의례에 이어 “대통령 각하의 취임사가…” “유진오 당수의 부정선거 규탄사가…” “본인은 제2기 임기중에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한국의 민주주의를 짓밟은 박 정권의 불법적인 폭거를…”

야당인 신민당은 중앙청에서 500여m 떨어진 안국동 당사 옥상에서 유당수를 위시한 유진산 이재형 정일형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 소속 의원과 지구당위원장들이 모여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같은 시간, 같은 순서로 부정선거 규탄대회를 거행했던 것이다.

이날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비록 멀리서 은은하게 울렸지만 양측의 자축과 규탄의 소리는 계속됐고 단상의 귀빈들은 시종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현장을 취재했던 필자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실감하면서 착잡했던 심경을 가누지 못했다.

<전 한국일보 이사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