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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권비판기사 잇단 축소

충성메모·군 환경파괴 등 내용 바뀌거나 축소

박주선 기자  2001.05.25 14: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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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가 안동수 전 법무장관의 ‘충성 메모’ 파문, 민주당 기획조정위원회의 여론조사결과 등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들을 축소 보도하고 있다는 내부 비판이 제기됐다.

언론노조 국민일보 지부(위원장 박정태) 공정보도위원회는 23일자 공보위 보고서에서 “여권과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들이 잇따라 축소 보도되거나 누락되는 등 정권 눈치 보기가 노골화되면서 기자들은 급속도로 무력감에 젖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보위는 지난달 27일 박정삼 편집인 겸 부사장이 편집회의에서 “편견없이 세상을 봐야 한다. 펜을 쓰는 의미를 모르면 정신병자한테 칼자루를 맡긴 것과 같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뒤 편집국 내에 비판적인 기사를 가급적 다루지 않으려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동수 전 법무장관 충성 문건 보도=문건이 공개된 다음날인 22일 국민일보는 강판에 들어간 사설을 대체해 재강판했다. ‘걱정스런 안법무의 앞날’이란 22일자 사설은 ‘신임 검찰총장의 과제’로 바뀌었다. 내용 역시 ‘충성 메모’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검찰총장의 과제를 강조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스트레이트 기사도 다수의 22일자 조간이 1면 또는 사회면에 비중있게 보도하고 석간인 문화일보도 1면 머릿기사로 다룬 데 비해 2면 2단으로 보도해 “문건 파문을 가급적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축소 보도”라는 공보위의 비판을 받았다.

사설 교체와 관련, 백화종 주필은 “사설 출고 후 회사 내부에서 검찰총장의 과제를 다루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논설위원실에서 정했던 방향이 바뀌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손질을 했다”고 밝혔다. 김영한 편집국장은 “스트레이트는 다소 작게 처리했지만 상자기사에서 사건의 전말을 모두 보도했다”며 “해프닝 같은 사안이라 당시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기가 어려워 스트레이트를 작게 다뤘다”고 말했다.

▷기사 축소에 집단 반발도=군부대의 환경파괴실태를 다룬 경찰팀의 시리즈가 보도 첫날인 21일 마감 직전에 갑자기 축소되자 담당 개자들이 편집국장에게 집단 항의를 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일보는 21일 편집회의에서 시리즈 첫회를 1면 머릿기사 및 3면 상자기사로 처리하기로 했다가 마감직전에 방침을 바꿔 3면 기사 하나로 다뤘다.

경찰팀의 한 기자는 “올초 기획을 하고 4월 중순부터 지방 취재 등 품을 많이 들인 시리즈를 마감 직전에축소하기로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지나친 자기검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편집인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군이 환경문제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군의 보안 문제가 노출될 수 있음이 지적됐으며, 법무장관의 임명 건이 생겨 기사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잇따른 축소 및 누락=9일자 ‘이대론 여 후보 당선되기 어렵다’ 제하 민주당 기획조정위원회의 여론조사결과 보도 역시 축소됐다는 지적이다. 정치부는 당초 이 기사를 1면과 4면에 걸쳐 비중있게 다루려 했으나 이는 4면 박스기사로 보도됐다. 강판 직전 청와대에서 기사에 대한 문의전화가 걸려온 것으로 알려졌고, 내부에서는 ‘알아서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자 ‘경제체력 떨어진다’ 제하 기사도 편집회의에서 1면 머릿기사로 결정이 됐다가 마감 직전 1면 우측 상자기사로 옮겨졌다. 또 지난달 22일 문일섭 전 국방차관의 도난 자금 출처의혹을 다룬 기사는 누락됐다.

이와 관련, 김 국장은 “내부 판단에 따라 기사 가치 판단을 했을 뿐 외압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