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창간 13돌 한겨레 고민은…

김 현 기자  2001.05.25 14:35:52

기사프린트

'한겨레의`이름을,`열정을`되살리자’

계속되는`적자…경영난`가중



'한겨레식`생존’`길찾기`나서

배`고파도`행복했던`시절



'그때를`간직하자’`마음은`하나





쌓여가는`적자`피로감



한겨레의 지난해 경영 실적은 7억4000만원의 흑자. 그러나 이 돈에는 직원 연말 상여금 50%를 삭감한 6억3000여만원이 포함돼 있다. 올해 적자가 뻔한 상황에서 연속 적자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한겨레가 올해 초 예상한 적자는 17억여원. 하지만 지난 1/4분기에 이미 20억원을 넘었다.

한 업무부서 관계자는 “예상 적자와 실제 적자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난 적은 13년간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자 폭은 달랐지만 한겨레의 경영난은 창간 이후 계속돼왔다.

지난 13년간 한겨레가 실질적인 흑자를 낸 것은 한 두 해에 불과하다. 그나마 가장 큰 흑자였던 98년 40억원대의 이익도 97년 한겨레리빙의 실패로 인한 90억 원대의 적자를 해소하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위기의식의 밑바닥에는 그동안 누적된 적자의 피로감이 깔려있다”고 말한다.

한겨레는 한 개인이 1% 이상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도록 정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주 신문의 창간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계속되는 적자 속에서 허약한 자본 토대의 개선을 위해서는 자본 확대를 통한 증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 기자는 “국민주 소유방식의 전환이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제기되는 대안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재계의 돈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논외의 방안이다. 한 기자는 “비판의 대상이던 정치권과 재계에 손을 벌리는 순간 한겨레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말부터 사원들의 퇴직금을 출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우리사주 지분을 늘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경영진은 소유구조의 변화에 부담감을 표하고 있어 아직 가시적인 논의의 진척이 없다.



'진보’에`앞서`독자`서비스를



재정난에 대한 편집국의 분위기는 ‘배고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한 기자의 표현처럼 별다른 동요가 없다. 편집국의 한 노조 대의원은 지난해 상여금 삭감안을 ‘늑대와 양치기 소년’ 얘기에 빗댔다.

‘이번엔 진짜 어렵다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한겨레가 언제 어렵지 않은 적 있었느냐’는 것이다.

편집국을 둘러싼문제의식은 신문의 ‘진보성’에 대한 정체성 확보가 더 절박하다.

창간 당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깨지고 ‘진보 대 보수’의 국면에서 한겨레 진보성이 어떻게 자리매김되어 왔는지 되돌아보자는 반성이다.

한 간부는 이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금기가 없어진 보도 영역’을 꼽았다. 그는 “다른 신문보다 한겨레가 상대적으로 비중있게 다룰 수 있었던 보도의 독자적인 영역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같은 문제는 진보성에 대한 내부의 공감대 형성과 신문상품으로서 기사의 포장 문제로 연결된다.

한겨레가 15일 창간특집호 1면 머리기사로 다룬 내용은 ‘신자유주의’.

강희철 노조 지면개선위원회 간사는 이 기사에 대해 “신자유주의에 대해 정확히 알고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대중의 수준에 맞게 쉽게 풀어쓰는 서비스 정신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4월말 ‘전자정부’에 대한 특집기사가 나왔을 때 최종 지면 편집을 본 한 기자는 “이것은 전자정부가 아니라 전기정부 같다”는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편집국 기자는 “진보라는 이념이 지면에 반영될 때는 ‘상품’으로서의 평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독자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조상기 편집위원장도 노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신문의 장점인 사회적 진보를 (먼저) 치고 나가는 식으로 취재하지 못했고 포장도 못했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차별`반대,`그러나…



조 위원장은 한겨레가 나름의 진보적인 목소리를 담아내는 분야로 노동·통일·인권 분야를 꼽았다.

그러나 이같은 부문에서도 편집국 내의 목소리는 내부의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대우자동차 노동자 대량 해고사태 당시 한겨레는 사설에서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사회면에서는 해고 노동자의 주장을 담아 엇갈린 논조에 대한 내부 지적이 잇따랐다.

한 기자는 “한겨레 편집국 내에는 다양한 진보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진보를 담아내는 장치는 잘 마련돼 있지만 내부적인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기자는 “선후배, 부서간에 진보에 대한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며 “이같은 인식 차는 지면과 기자와의 괴리감으로 나타나거나 부서간의 다른 보도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진보에 대한 인식 차는 신문사 조직내에서도지면과 괴리감을 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한겨레는 고용불안과 차별 대우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올해 들어 지면에 오른 기사만도 161건.

그러나 정작 한겨레의 정보자료과, 출판지원과 등 5∼6개 부서는 같은 일을 하는 직원일지라 하더라도 비정규직 직원을 전체 직원회의에서 배제하고 있다. 또 어느 부서는 지시사항은 모두 전달받지만 업무의 변동 사항은 정규직원들만 회의를 갖는 등의 변칙적인 회의를 진행한다. 한 업무부서 직원은 “언제부턴가 정규직원의 업무에 필요한 복사 작업마저 비정규직의 몫으로 돌려졌다. 정규직과 보이지 않는 주종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겨레의`이름으로



계속되는 경영난 속에서 진보 언론의 위상을 찾는 한겨레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한겨레 사람들은 이같은 문제의 해답을 구성원 스스로에게서 구한다. 해법과 의견은 달라도 ‘한겨레의 이름을 지키자’는 마음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배고파도 한겨레에 다니는 것이 행복이었던’ 사람들의 열정을 다시 지피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기자의 다짐같은 말 속에는 절박감마저 묻어난다.

“모두 헝그리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겨레가 아니면 안되었던 창간 당시의 긴장감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이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직장을 물을 때 바로 저곳이라고 가리킬 수 있는 곳이 그 때에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