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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여야 3당 정치자금 회계조작 실태

정치권`도덕`불감증에`분노

이창훈  2001.06.01 23: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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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비`명세서`주소`‘미아리`텍사스’…실소`금치`못해





특종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공분(公憤)이었다. 취재팀 전원이 일주일 이상 전력투구했지만 방대한 분량인 여야 3당의 지난해 국고보조금 회계보고 내역과 8000여장의 영수증 진위여부를 추적 검증하기는 쉽지 않았다.

거래업소의 확인 거부. 민주당 당직자, 선관위 직원들과 벌인 몸싸움 직전의 충돌…. 그럼에도 팀 모두가 끝까지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치권이 빠진 심각한 도덕적 해이의 실상이 하나 하나 드러나면서 고조되던 흥분과 분노였다.

자민련이 김종필 명예총재의 동창회비와 골프비용, 와인 구입비로 정당자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한 실태나 한나라당이 3000여만원의 전기요금을 중복 계상한 것은 차라리 애교였다.

민주당이 증빙서류로 제출한 수 천만원 대의 영수증이 폐업한 유령업소의 것으로 밝혀지고 정당법의 유급 사무원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가짜 급여명세서를 만들어 서명까지 날조한 사실을 확인하고는 기사 이전에 나라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고도 정치권이 개혁을 운위하다니…. 자민련 선전활동비 명세서의 수상한 주소가 속칭 ‘미아리 텍사스’의 것임이 확인됐을 때는 모두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해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정당회계보고서의 문제점을 파헤치려 했으나 ‘증빙자료 부실’이라는 피상적 지적뿐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했었다.

정치권의 모럴해저드를 단죄할 물증이 드디어 포착된 것이다. 본지 집중보도(4월 2·3일자)뒤 경실련과 참여연대가 진상규명 촉구성명을 발표하고 SBS의 대대적인 후속보도가 이어졌다. 감사원은 오는 10월 정당보조금 직접 감사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선관위도 5월초 정당 회계보고서 제출을 연 1회에서 연 4회로 늘리는 내용의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냈다.

정작 당사자인 정치권만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그 흔하던 성명이나 논평 한 줄 없다. 하지만 우리 팀은 이번 취재를 통해 확신하게 됐다. 언론이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게을리하지만 않는다면 정치문화도 언젠가는 달라지지 않을 도리가 없으리라는 것을.



이창훈(세계일보 기획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