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공무원과 유흥업소간 뇌물비리 실태를 보도하려는 방송사에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던 한 지방자치단체가 이번에는 주민들을 상대로 다분히 의도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 강남구청은 SBS ‘뉴스추적’이 지난달 11일 방영한 ‘불법영업의 비밀-상납’ 보도와 관련 “주민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자 한다”며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강남구 통·반장 7800여명을 상대로 이례적인 설문조사를 벌였다.
질문은 ▷SBS 뉴스추적 방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①과장보도 ②사실보도 ③모르겠다 ④보지 않았다 ▷구청에서 반론보도청구,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의 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소식지를 통해 전 구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등 모두 3가지. “강남구민과 강남구청의 명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라고 강조한 이 설문지에는 ‘뉴스추적’ 보도에 대한 구청측의 반박 내용이 A4 용지 4쪽 분량으로 첨부돼 있다.
강남구청 한 관계자는 “설문항목은 과장회의를 거쳐 작성했다”며 “동사무소별로 통장회의를 했고 통장들이 반장들에게 설문지를 배포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밝히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강남구청 설문이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지 않은 의도적인 설문이라고 지적했다. 구청 일에 우호적인 통·반장을 설문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도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는 것. ‘한길리서치’ 노성국 연구원은 “설문구성 자체가 특정 답변을 유도하고 있다”며 “방송을 보지 않고 구청측 해명자료만 읽은 사람은 ‘과장보도’라고 응답할 가능성이 높아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일은 강남구 한 주민이 “구청에서 황당한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며 지난 2일 SBS ‘뉴스추적’으로 제보해 알려졌다. ‘뉴스추적’의 한 기자는 “일부 공무원의 상납 비리를 지적한 방송에 대해 구청 전체의 명예훼손 운운하며 법적 대응 필요성을 주민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강남구청 및 구청 위생보건과 공무원 17명 전원은 8일 ‘뉴스추적’ 보도와 관련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보도 신청을 접수했으며 곧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뉴스추적’제작진은 “공무원에게 상납했다는 업주들의 제보를 근거로 정당하게 보도한 것”이라며 “방송 전 변호사 자문을 거치고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재판부의 심리까지 마쳤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