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출근. 5시 30분까지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종로 5가, 동대문, 신설동역 가판대로 조간신문 배달. 오후 12시 석간 신문 배달. 오후 5시 내일자 조간신문 배달 시작. 오후 8시 뒷정리. 하루에 취급하는 신문은 약 3000부. 매일 그가 읽는 신문은 종합지, 스포츠지, 경제지 등 20여가지.
최광묵(40) 씨는 올해로 26년째 신문과 살고 있다. 14살이던 중 1때 학업을 중단하고 종각역에서 신문을 팔기 시작해 요즘엔 종각역에서 종로 5가, 동대문, 신설동역 가판대로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 어찌보면 신문을 공급하는 평범한 총판 직원이다. 하지만 그는 ‘거리의 편집자’로 통하는 특별한 사람이기도 하다.
“74년 종각역에서 신문을 팔면서 주요기사의 제목을 골라 가판대 앞에 붙이기 시작했어요. 신문을 많이 팔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자칭 ‘종각역 판매대의 특종’이라는 박종철 씨 고문 사건이다.
당시 석간이던 중앙일보 2판(오후 2시 발행) 사회면에 이 사건이 보도되자 가판대에서 이를 속보로 올렸다.
이심전심으로 타 전철역 가판대에 이 소식이 퍼졌고,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그는 당시를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80년에는 중앙일보 사회면에 1단 기사로 났던 ‘일본 사회단체의 김대중 씨 석방 요구’를 가판대 주요기사로 올리면서 경찰서에 연행됐던 기억도 있다. 단지 기사 제목을 가판대에 붙였다는 이유로 16일간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풀려났다.
“신문 기사를 보면서 사회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은 왜 데모를 하고, 사람들은 왜 분신 자살을 할까 밤잠 못자고 고민했어요. 그러다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양심에 걸려 85년부터 각종 집회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 나라를 위해 데모를 하려면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공부부터 시작해 4년간, 고등과정까지 마쳤지만 대학진학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정의로운 ‘거리의 편집자’이던 그가 요즘엔 ‘거리의 편집자’라는 말이 부끄럽다고 한다.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해지면서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대개 정치 뉴스보다는 증권, 스포츠 뉴스를 주요 기사로 올리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던 19일에도 신설동역가판대 주요 기사는 증권 시장과 박찬호 얘기였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신문을 보다 잘못 표기된 단어, 연도, 이름 등이 눈에 띄면 곧바로 신문사에 전화를 한다.
며칠 전에도 모 스포츠신문에 ‘홀홀단신’이란 단어가 제목에 쓰인 걸 보고 바로 전화를 걸어 ‘혈혈단신’으로 바로잡았다.
90년대 초에는 1년여간 동아일보 모니터 회원을 했다. 모니터 회원을 하면서 기자협회 자료회원으로 가입해 기자협회보를 구독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요즘엔 미디어오늘을 꼬박꼬박 본다며 기억에 남는 기사로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고대앞 사건, 장중호 한국일보 상무의 병역비리 연루설, 고 정주영 회장 관련 친자확인 소송 보도를 둘러싼 현대측 외압설 등을 꼽았다.
한겨레 창간 때 주식 40주를 구입한 한겨레 주주이기도 하다. “투자를 목적으로 주식을 산 게 아니죠. 당시 담당직원은 제가 신문 판매를 한다고 하니까 놀래더군요. 그 직원에게 제 목소리를 내는 진정한 언론이 돼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런 그가 한겨레에 실망한 모양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한겨레가 객관적 시각을 잃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오히려 “현장에 있으면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이란 걸 느껴요. 많이 팔리거든요. 김대중, 류근일, 이규태 등등 신문에 스타들도 있고요. 논리정연하고 확실한 색깔이 있어서 좋아요”라며 솔직한 얘기를 했다.
요즘 지면을 달구었던 파업 보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왜곡됐다며 쓴소리를 했다. “언론이 시민들의 불만을 부추기는 것 같다. 전체 파업 보도 중에서 최소 20~30%는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기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묻자 그는 언론개혁 얘기를 꺼낸다.
“각 신문마다 노조가 있는데 그 사람들만 뭉쳐도 언론개혁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요? 언론노조가 있는데 왜 언론개혁이 안 되는지 이해가 안되요. 언론 스스로가 사회를 공평하고 정당하게 이끄는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