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칼럼] 일본의 기자실 논쟁

황성기 특파원  2001.06.30 05:53:30

기사프린트

바다 건너 일본에도 기자실 개방을 둘러싼 갈등은 존재한다. 동계올림픽이 열린 나가노가 그렇다. ‘개방하겠다’ ‘안된다’는 현청과 기자실의 ‘전쟁’이 한여름 햇볕만큼 뜨겁다.

한국에서는 인천공항 기자실 이용을 비회원사인 오마이뉴스가 요구하면서 논란이 됐으나 일본은 좀 다르다. 나가노현 지사가 기자실에 선전 포고했다. 우리의 관행으로 볼 땐 ‘간 큰’ 일이지만 일본 시민단체에선 박수를 받는 듯 하다.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 지사가 ‘탈 기자실’을 선언한 것은 지난 5월 중순이었다. 기자실에서 지사를 불러 기자회견을 하는 기존 방식이 아닌 지사가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하면 회견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신문·방송·통신사는 물론 잡지나 인터넷 언론, 작가, 주민들도 회견에 참석토록 하겠다는 게 선언의 취지였다.

선언 이후 지금까지의 경위를 간단히 살펴 보자. 지사의 일방적 선언에 몇차례 항의했던 기자실측은 지난 6월 21일 “선언을 수용할 수 없다”는 공식 의견서를 지사에 제출했다. 전면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지사의 의지는 완강하다. ‘알 권리’를 강조하며 누구나 이용가능한 프레스센터를 8월까지 만들기로 했다. 수리를 위해 3개의 기자실을 폐쇄키로 했다. 언뜻 기자회견의 주도권 쟁탈전 같지만 “세금으로 짓고 운영되는 현청 내 기자실은 누구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다나카 지사의 속내다.

원칙적으로 옳은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수 언론사들은 이번 전쟁을 팩트로만 짤막하게 보도할 뿐 ‘잘한다, 못한다’는 보도는 일절 않는다. 기자실 이용료는 고사하고 전화 요금까지 현청측에 부담시키고 있는 언론사가 태반이라고 한다. 침묵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사정이 있는 셈이다.

2차 대전 패전 후 맥아더 미 군정사령부(GHQ)는 미국식 민주주의 보급을 위해 일본의 중앙·지방 정부에 누구든지 출입·보도할 수 있는 언론 자유를 보장했다. 그러던 일본에서 경제 부흥을 이루고 일정한 민주주의를 달성한 70년대부터 아이러니컬하게도 회원제로 운영하는 기자실의 관행이 굳어졌다고 한다.

일본에도 기자실 개방을 놓고 “옥석을 가리기 어렵다”든가 “인터넷 시대에 웬 기자실”이라는 찬반양론이 엄연히 존재한다.

도쿄에서 일하는 한국 특파원으로서 일본 관청 특유의 높은 벽을 실감할 때면 찬반이건 뭐건 간에 다나카 지사의 ‘탈 기자실 선언’을 100%지지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