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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의식한 '자기검열' 체질화

기획시리즈-위기의 언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1)절대권력 언론사주

박미영 기자  2001.07.07 11: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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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언론은 위기다. 국민들이 언론을 믿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고, 기업으로서의 도덕성과 투명성도 의심받고 있다. 세무조사 결과 드러난 우리 언론의 환부는 단순한 대증 요법으로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곪아 있다. 기자사회는 심각한 정신적 공황 내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기자’이기 보다 ‘사원’이기를 강요하는 풍토 속에서 기자사회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변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기자협회보는 오늘의 상황을 고민하는 기자들과 함께 새로운 언론질서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회사자금으로 아들의 해외유학 경비를 대고, 사저에서 쓰는 차량 운전기사 급여를 내는 등 이번 언론세무조사 결과 드러난 갖가지 비리들은 그동안 언론사주가 공적 기업인 언론사를 어떻게 ‘사유화’ 해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언론사주의 절대적인 지배구조가 신문제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지면이 파행적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주의 의중에 따라 중요한 기사가 삭제되거나 축소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기사가치가 별로 없는 내용이 확대 재생산 되는 경우도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자들이 국민과 독자들보다 ‘사주의 의중’을 먼저 고려하는 ‘자기검열’이 체질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주생각이 최우선’

이같은 기자들의 생각은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언론재단이 지난 99년 실시한 기자의식조사에서 “사주로부터의 편집 편성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은 무려 81.9%에 이르렀다. 또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문순)이 올해 초 기자 3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기자들이 언론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이 ‘편집권 독립’(50.3%)이었다.

실제 언론사주가 편집권을 침해하고 지면을 사유화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그동안 여러차례 있었다.

지난해 10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비판한 동아일보 민병욱 논설위원의 칼럼이 가판신문에 보도됐다가 김병관 명예회장의 말 한마디에 시내판에서 빠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 또 동아일보는 지난 4월 국세청의 이재용씨 증여세 부과 사실을 다른 신문들이 1, 2면 주요기사로 보도한 것과는 달리 경제면 2단으로 축소 보도해“김 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사돈이라는 특수관계 때문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세습경영 “찍히면 끝장”

국민일보 조희준 전 회장은 97년 10월 국민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1면에 쓰일 사진을 직접 선택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고급 외제차 시리즈, 무기 관련 기사 등 자신의 관심분야를 기사화 하도록 해 내부 반발을 샀다. 특히 이같은 지시에 불복한 부장들을 지방으로 발령내는 등 보복인사를 단행하고 노조와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고객서비스본부, 여론조사부, 총무국, 윤전부문, CTS지원본부 등을 잇따라 분사 및 전적시키는 등 편집권 침해와 경영전횡을 일삼아 엄청난 노사갈등을 빚었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사주의 이같은 편집권 침해에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고 있다. 경영권을 가진 사주에 의한 보복인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2세, 3세에게 대물림되는 세습경영이 ‘한번 찍히면 끝’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기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언론사주들의 경영전횡과 편집권 침해는 언론사주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제도적인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이같은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편집권 독립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동황 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번 국세청 발표로 드러난 언론사주들의 불법 비리 행각은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신문사가 그동안 사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유화돼 왔고 신문지면도 그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며 “언론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등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경영진과 취재·편집 종사자가 대등하게 참여하는 편집위원회 구성 및 양심에 반하는 취재·보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편성규약 채택 등 편집권 독립 방안’과 ‘신문사의 주식소유 한도를 30%로 규제’하는 내용의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해 놓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