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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용정 동아일보 편집국장

"비판하지 못하면 기자도 신문도 아니다"

박주선 기자  2001.07.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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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굵다, 거칠지만 정이 많다, 기자답다, 강직하다, 거침없다. 김용정 동아일보 신임 편집국장을 아는 사람들은 김 국장에 대해 대체로 이런 평가를 한다.

68년 입사해 올해 말 정년 퇴임을 맞는 ‘동아일보 최고령 편집국장’, 80년 해직됐다 84년 복직한 ‘해직 기자 출신 편집국장’이기도 하다. 사내에서는 외모 때문에 ‘고릴라, 고선배’로 통한다는 그를 13일 오전 8시 편집국장실에서 만났다.





-94년부터 논설위원, 심의연구실장으로 지내다 7년만에 편집국장으로 편집국에 돌아온 소감은.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현장으로 왔다는 의미에서 감회가 더욱 새롭다. 하지만 여러 상황이 어려워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무거운 중압감을 느낀다.”

-11일 취임식 자리에서 동아일보가 정체성의 위기에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는 이유와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동아일보의 위기는 정체성의 위기에서 비롯된다는 데 공감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동아의 제작방향은 불편부당, 시시비비, 엄정중립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전의 지면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뜻에서 했던 말은 아니다. 그것은 후배들과 전임 편집국장에 대한 부정일 수 있다. 공정성과 객관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일반론에서 한 얘기일 뿐이다. 다만 지면에 대한 반성은 할 것이다.”

-기자 총회에서 제기된 최근 지면의 공정성과 객관성 결여에 대해서는 공감하는가.

“자기 반성 차원에서 제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자기 반성 없이는 자기 발전을 할 수 없지 않은가.”

기자총회에서 거론됐던 ‘세무조사는 김정일 답방 정지용’ 등의 기사에 대해서는 “몇몇 기사로 전체 지면의 공정성을 평가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대신 김 국장은 “과거 기사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색깔이 불분명하다’, ‘조선일보 따라가기 식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동아일보가 색깔이 불분명하다는 건 주관적 편견이지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 외부 평가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전폭 수긍할 수는 없다. 특정 신문과 비교하는 것도 신문마다 나름대로 제작 방향이 있는데 부적절하다.”

-언론사세무조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 어떤 세무조사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되지 않았던 적은 없다. 하지만 나름대로 숨겨진 의도나 목적은 있었다. 요즘도 조세정의와 언론 목조르기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위험하다. 사회가 갈갈이 찢어지고 사회통합을 해친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 지면 제작 방침은 어떠한가.

“기자는 정치인이 아니고 기자일 뿐이다. 시시비비에 따를 것이다. 팩트만이 아니라 진실까지 전달할 것이다. 기사가치 판단은 양식과 합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이번 인사를 두고 김 국장이 호남 출신인 점 등을 들며 동아일보가 정부에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넌센스이다. 동아일보와 날 모욕하는 얘기다. 동아일보에 재직하는 동안 부끄럽지 않게 기자생활을 했다. 외부에서는 정부를 향한 협상의 메시지가 아니냐는데 언론자유와 무엇을 바꾸겠는가. 또 지금 협상이 가능한 때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혹들이 사실이 아님을 지면을 통해 확실히 검증해 주겠다. 정부 비판을 안 할 것이라는 건 천만의 말씀이다. 비판은 신문의 본령이다. 비판하지 못하면 기자도 아니고, 신문도 아니다.”

김 국장은 인사 배경에 대한 질문에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속도를 붙였다. “지면으로 검증하겠다”고 자신하는 김 국장에게서 결연한 의지마저 느껴졌다. 인사와 조직 운영에 대해서는 큰폭의 변화를 염두에 둔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병폐가 사람이 바뀌면 전임자가 하던 일을 뒤엎고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다. 조직의 개선 과제를 파악해서 인사요인이 있으면 인사를 하겠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성급하게 하지는 않겠다. 인사를 한다면 원칙에 충실하게 하고, 기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을 것이다.”

-사내에서는 벌써 지난해 신설된 이슈부 폐지가 거론되기도 하던데.

“예단이다. 전임국장이 이유가 있어서 만들었던 조직 체계를 1년만에 뜯어고치는 건 조직의 안정성을 해친다. 조직운영의 묘를 통해 푸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시스템 검토는 항시하고, 사내 의견을 수렴해 신중히 결정하겠다.

-기자들의 생각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 내부 단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당연히 다원화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획일적인 조직이야말로 자기 변화가 없는 조직이다. 단 리더가 이를 하나로 묶는 비전을 제시해야한다. 절충점을 찾는 통합이 아니다. 중용은 더 결연한 의지이지 않은가.”

-75년에는 자유언론실천위원회에 참여했고 80년 4월에는 신군부에 대항해 검열거부를 외치다 해직되는 등 평탄하지만은 않은 길을 걸었는데.

“내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다. 자랑거리도 아니다. 양심에 따라서 최소한의 노력을 했을 뿐이다. 후회는 전혀 없고 오히려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편집권 독립에 대한 견해를 묻자 김 국장은 “외부 압력뿐만 아니라 사내 압력에 대해서도 편집권이 지켜져야 한다”며 “경영진의 압력은 물론 편집국장, 중간간부들이 기사 방향을 장악하고,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기사 쓰기를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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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광주 출생

68년 동아일보 입사

80년 해직

81년 한국산업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

84년 동아일보 출판국 편집위원

87년 동아일보 편집국 사회부 차장, 생활경제부장(90) 수도권부장(91) 체육부장(93)

94∼2000년 논설위원, 심의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