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방영을 금지한 것과 관련 언론자유 침해와 개인의 인격권 보장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합의1부(재판장 손윤하)는 지난달 28일 아가동산 대표 김기순씨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아가동산, 그후 5년’을 대상으로 제기한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김씨는 대법원에서 살인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았을 뿐 아니라 당시 언론매체를 통해 아가동산의 성격과 실체가 상세히 알려졌으므로 이를 다시 취재해 방영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96년 ‘아가동산 사건’의 관련자들이 최근 증언을 번복함에 따라 ‘아가동산’의 실체를 규명하는 내용을 새롭게 방송하려 했던 SBS측은 이 프로그램을 특집 다큐멘터리로 긴급 대체하고 지난달 30일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방송사를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은 대부분 기각되거나 일부만 수정·삭제해 왔으나 프로그램 전편을 금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 따라서 방송관계자들은 “언론의 사회비판 및 감시 기능이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SBS PD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의혹을 제기하지 못하고 법리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내는 노력도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PD연합회(회장 최진용)도 지난달 31일 성명에서 “각 방송사 시사프로그램들은 그동안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사건을 다뤄 새로운 범인을 잡는 등 개인의 인권과 공익을 위한 언론의 임무를 수행해왔다”며 “이번 ‘아가동산’ 사건 취재에서 새로운 증거와 상황 변화가 있다면 당연히 시청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씨측 소송대리인 안상운 변호사는 “방송금지 가처분 제도가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엔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헌법은 언론의 자유뿐만 아니라 책임도 규정해놓고 있는 만큼 피해자의 명예와 인격권도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공익적인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 전면 금지는 언론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성규 변호사는 “‘언론자유’와 ‘개인 인격권’이라는 서로의 권리가 충돌한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권리만 손들어 주고 방송보도자체를 금지한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과잉침해”라고 밝혔다.
이번 법원 결정을 계기로 방송금지 가처분 제도에 대한 위헌 논란도 다시 한번 불거질 전망이다. MBC는 지난해 5월 방영금지 가처분 제도가 헌법상 보장된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 현재 계류중이다. SBS 역시 이번에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