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언론사들이 도마에 오르는 요즘이지만 스포츠신문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경력(?)을 갖고 있다. 방송의도는 차치하더라도 몇 달전 MBC ‘PD수첩’에서 스포츠신문들의 ‘황색질주’를 다룰 때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러던 중 인터넷언론의 원조격인 딴지일보를 통해 ‘스포찌라시’라는 다소 충격적인 용어를 접했다. ‘X양 비디오’로 대표되는 선정주의, “최진실 임신 못한다(왜? 바빠서!)” 같은 뻥제목들, ‘보도자료 훼손을 두려워하는’ 영화기사들…. 뭐 이런 걸로 판단해 볼 때 이건 신문이 아니라 거의 ‘찌라시’라는 것. 허거걱∼ 그럼 나는 기자도 아닌거구만.
센세이셔널리즘과 판매경쟁
가정판을 제외한 1면 사이드에는 보통 여성 연예인이나 살색 찬란한 사진을 전진배치 시킨다. 일종의 전통(?)인 셈인데 가끔 안넣거나 못넣는 날이면 십중팔구, 일선 판매지국에서 전화가 온다. 눈길 끌만한게 없어 다른날 보다 덜 팔린다고. “아무래도 그렇죠?” 용기백배해 화끈한 사진 하나 넣어주면 “해도 너무한다”며 이번엔 독자들이 아우성이다. 그런 사진을 넣은 날 신문은 잘 팔린다는데 그렇다면 스포츠신문 구매자들의 대부분은 이문열씨 말마나따 ‘침묵하는 다수’인가? 매일 오후 편집국 회의시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바로 ‘스포츠 4사 판매조사 집계표’. 종이위에 달랑 새겨진 수치가 회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방송 종사자들은 “15초안에 터지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간다”며 시청률 경쟁의 두려움을 호소하지만, 스포츠신문 기자들 역시 지독한 가판 판매율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참을 수 있는 가벼움’ 을 위해
어떤 독자들은 만날 연예인 스캔들이나 들추는 게 어찌 언론이냐고. 박찬호가 지각했다는 기사조차 1면에 가는게 무슨 신문이냐고. 하지만 스포츠신문 존재의 근거는 정작 그러한 ‘가벼움’에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약자를 위해 권력을 감시하는 ‘정론지’ 역할은 종합지가 해주면 된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좋아하는 스포츠 소식을 알기 위해,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기 위해 잠시 펼쳐 봐주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가벼움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 지나친 가벼움이 만성화되면 그땐 정말 ‘찌라시’ 에 불과하니까. 제대로 된 스포츠 ‘신문’을 만들기위해 ‘참을 수 있는 가벼움’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곳 사람들의 몫이다.
뱀발 하나 달자. 스포츠신문들이 우리 스포츠를 살찌우고 대중문화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해 왔다는 생각은 이곳 사람들만의 망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