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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7주년에 부쳐

'언론평의회' 구성을 제안한다

김영모 회장  2001.08.18 00: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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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은 지금 오랜 관행적 폐습에서 벗어나 언론의 정당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 과정에서, 언론계 내외의 다양한 입장차이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창립 37돌을 맞는 이 시점에서 기협이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있는 것도 이처럼 120년 한국언론사 초유의 범국민적인 언론개혁 논의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협 역시 역사의 우를 범치 않기 위해 수없는 간담회를 통해 신중한 방향 설정에 노력하고 있고, 나름의 입장을 세심하면서도 뚜렷이 표명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론적 이견은 지금도 열띤 토론과 연구를 통해 ‘최대공약수’로의 접근에 이르고 있습니다. 배경이야 어떻든 현재 진행중인 새로운 언론환경이 개혁으로의 소중한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공감이 있기에 과거의 지난한 노력에 이어 시장정상화로의 힘든 행보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헌데 언론활동의 또다른 주체인 편집간부나 발행인들, 곧 신문협회나 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의 선배님들은 이 급박하면서도 귀중한 시간에 무엇을 하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도 또한 현금의 국면에 대한 ‘입장차이’ 때문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몇가지 대목이 있습니다.

기협은 현재의 논의가 대체로 ‘언론탄압이냐 아니냐’는 비효율·비논리적 논쟁으로 전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행위 조사는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 사항입니다. 설혹 그것이 ‘언론탄압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탈세 등이 탄압논리의 무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탈세의 규모와 실제에 대한 법적인 확인과정도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이는 다른 레벨의 논의가 되겠지요. 오히려 ‘그렇다면 왜 언론이냐’는 ‘언론 표적조사’ 논리가 있을 수 있겠습니만, 이것도 언론이 자타가 공인하는 ‘권력’임에 분명하고 저간에 재벌해체 등 재계와 금융계의 개혁작업이 추진돼온 것을 감안하면, 기업·행정부·입법부 등과 함께 민주사회의 기간제도로서 의무와 권리, 봉사와 권력의 한 축인 언론이 면세와 탈세의 성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원초적인 대의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한 ‘원칙’일 것입니다.

그래도 남는 것은 ‘과연 정치적 의도가 없는가’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정부나 정당의 어떠한 행위가 비정치적일 수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또한 세무조사 등과는 다른 층위의 논의라는 게 기협의 입장입니다. 의도야 어쨌건 사안의 원인은 불법 탈세에 있기 때문이며, 관련법안이 언론만을 대상으로 급조된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결과로써, 탈세로 인한 추징금 부과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치적 탄압이 나타난다면, 기협이 앞서서 정부와 사투를 벌일 것입니다.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행위 조사 외에 정부의 언론에 대한 다른 개입 사례가 없다면, 적어도 언론계 내에서는 더 이상 ‘세무조사=언론개혁’이라는 당치도 않은 전제 아래 ‘홍위병들이 정부주도 아래 언론개혁에 동원되고 있다’는 등의 견강부회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세무조사는 언론개혁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언론개혁을 위한 사회적 장치의 확인이거나, 부당한 특권의 해체로 인한 언론개혁의 가능성 제고 정도의 의미밖에 갖지 못합니다. ‘정치적 의도’ 논쟁은 정치권에 맡깁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판단에 맡겨야 옳을 겁니다. 이제 현업언론인들이 할 일은 이번 조사 등으로 인해 불거진 언론내부의 환부를 치유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율적인 언론개혁’의 길을 우리 스스로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협은 그 방안으로 ‘언론평의회’의 구성을 제안합니다. 언론사주, 현업언론인, 대법원 판사, 노조, 언론학자 등 언론계 및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평의회를 통해 ‘신뢰’와 ‘약속’으로서 언론계 전반의 문제를 언론 스스로 풀어나가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서구언론사를 볼 때 평의회의 첫 번째 임무는 ‘편집장 강령(Editer’s Code)’의 제정입니다.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3국 등 언론이 발전한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이 이 강령을 채택하고 있는데, 일부국가에선 아예 법제화한 나라도 있습니다. 이 강령의 내용은 편집책임자에게 기자인선 및 인사, 지면 제작의 전권을 부여하는 것인데, 사주와 편집책임자가 편집권과 관련해 법정에서 만났을 경우 편집국장의 손을 들어준 사례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물론 사주는 이사회를 통해 편집책임자를 임면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고용계약서를 통해 편집책임자로부터 사시의 실천을 약속받을 수 있습니다.

언론개혁의 핵심논제는 역시 편집권 독립입니다. 한국의 경우 사주 여부를 불문하고 한 사람의 사장이 편집과 광고, 판매,총무 등 편집과 경영 전반의 업무를 총괄하기 때문에 조직관행상 광고주나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가 지면에 반영될 개연성이 항시 존재합니다. 그러나 평의회가 구성돼 에디터즈 코드를 제정하고 모든 언론사주와 현업언론인들의 약속에 의해 이것이 지켜진다면 편집책임자는 편집의 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광고나 판매 파트의 어떠한 영향력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 자율적인 편집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선배님들이 나설 때입니다. 기협의 젊은 후배들과 함께 현업 언론인들이 주체가 된 언론개혁의 활로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언론평의회의 구성을 이끌어 한국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