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10일 소환에서 17일 구속까지 해당 사주들은 변호인단과 대책을 논의하거나 사원들을 만나는 등 비교적 차분한 행보를 보였다. 각사 관계자들은 17일 밤 구속 결정이 나올 때까지 회사에 남아 결과를 예의 주시했으며, “예상했던 수순”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해당 언론사들은 국세청 고발과 달리 사원총회나 성명 발표 등 별도의 입장 표명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변호인과 대책 마련, 지면제작 당부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밤샘 조사를 마친 11일과 공휴일인 광복절을 제외하고 회사에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소환 전까진 주로 변호인단과 대책을 협의했다는 전언이다.
방 사장은 소환 전날 사회부 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등 지난달 말부터 경제부, 정치부, 문화부 등 부서 별로 기자들과 식사를 하며 “구속이라는 상황에 기자들이 영향받을 필요는 없다. 흔들림 없이 신문을 만들어 나갈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전날인 16일에는 임원진들과 점심을 같이 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17일 사장이 법원에 출두하면서 읽은 ‘사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은 평소 본인의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 사장은 국세청 고발 이후에도 “회사 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적은 전혀 없다”고 혐의사실을 부인하며 “이럴 때일수록 흥분하지 말고 독자 입장에서 신문을 만들어 나갈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조희준 국민일보 전 회장 역시 지난 8일 소환 전후에도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구속을 앞둔 16일에는 파이낸셜뉴스, 스포츠투데이 편집국에 와서 부장급 이상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며 “대표이사 중심으로 회사를 잘 운영해달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일보에는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으나 몇몇 간부들이 16일 오후 회장실로 찾아가 조 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간부는 “국민일보에 몸담았던 회장이니까 구속을 앞두고 고생이 많겠다는 인사차 방문했다”고 전했다.
김병관 동아일보 전 명예회장은 지난달 임시주총에서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 회사에 모습을 비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이미 회장실도 없어진 마당에 특별히 자리할 사무실도 없다”면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명예회장직에서 사퇴한 이후 회사에 들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 전 명예회장은 지난 10일 소환조사 이후 현장에나간 회사 관계자들에게 ‘흔들림 없는 지면 제작’을 당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 달라진 것 없다” “지켜보자” 분위기
해당 언론사들은 국세청 고발 당시 기자총회나 편집국 성명이 나왔을 때에 비하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 등을 제외한 별도 입장 표명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진실은 법정에서 가릴 것이며 사주 구속을 통한 언론탄압 기도에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게 기본 입장이다. 한 기자는 “예상했던 일”이라며 “기존 지면제작 원칙대로 신문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기자총회에서 언론탄압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달라진 상황은 없기 때문에 추가로 입장을 표명할 필요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한 기자는 이번 구속과 관련 “편집국의 경우 격앙된 반응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후 진행과정을 관망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동아일보 내부 움직임과 관련 관심을 모은 것은 지난 8일 김용정 편집국장이 부서별 대표들과 가진 간담회였다. 김 국장은 이날 “세무조사만으로 지면을 채우면 독자는 금방 싫증 내기 마련이다. 독자중심으로 지면을 제작해야 한다”며 “우리 입장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상대화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사가 된다면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라도 당연히 써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기자는 “‘구속 정국’의 추이를 지켜본다는 정서 외에 지면제작의 주체가 되어야 할 기자들이 국장이 밝힌 제작방침까지도 지켜보자는 식의 반응이 없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송필호 부사장이 구속대상에서 빠진 데 대해 “우려했던 상황은 피했다”며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추징액 납부 문제가 남아 있지만 한 고비는 넘긴 셈”이라며 “이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에 관심이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홍석현 회장은 검찰의 사주 소환이 임박했던 지난 6일 임직원들과 함께 충남 아산에서 열린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한 데 이어 지난 9일엔 해마다 참석해 온 동북아경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하와이로 출국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공식 일정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역시 노조에서 ‘영장청구 내용이 밝혀지면 그때 가서 입장 표명 여부를논의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조희준 국민일보 전 회장이 발행인으로 있는 파이낸셜뉴스의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이기는 하지만 국민일보에 재직했을 때의 일로 구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편집국 차원의 입장 표명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장씨 일가가 구속 대상에서 빠진데 대해 정부가 “한국일보를 봐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의 고발장에 따르면 한국일보측은 해외에 유학중이거나 회사에 근무하지도 않는 76세의 사주 일가에 대해 2년여 동안 4억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또 사주들의 해외여행경비 5억원을 회사돈으로 지급하는 등의 혐의를 받았지만 구속 대상에서는 제외됐기 때문.
이와 관련, 언론노조(위원장 최문순)는 17일 ‘현 정권의 한국일보 비호 규탄 및 한국일보 정상화 촉구’ 집회를 열기도 했다.
“불구속 요청” 대여권 로비설도
사주 소환을 둘러싸고 언론계 일각에서는 여권에 대한 언론사들의 로비설이 나돌아 관심을 모았다. 고발 대상 언론사의 편집간부나 대주주측이 여권 핵심 관계자를 만나 불구속수사를 요청하는 등 선처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반면 로비설에 거론된 정부인사의 관계자는 “이 상황에서 협상이 있을 여지는 없다”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