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안보 편집증'언론의 '안보 편집증'이 또 도졌다.

김동원·서정은  2001.08.25 10:52:21

기사프린트

8·15 평양 민족통일대축전과 관련, 대부분의 언론은 행사 개최의 의미나 성과는 외면한 채 참가단의 우발적 행적을 전후 사정이나 배경은 무시한 채 ‘친북행위’로 몰아 일방 보도하는가 하면, 행사 참석자들로부터 전해들은 ‘하더라’식의 발언 내용을 검증없이 확대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방북단 혐의사실 발표를 검증없이 보도했다가 내용을 수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8·15 축전 의의와 성과 외면



8·15 평양 대축전 행사는 초기 논란을 겪기는 했으나 분단 이후 최초·최대 규모의 민간교류라는 의의를 갖고 있었다. 또 내년에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행사를 열고 북쪽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키로 하는 등 상당한 성과도 있었으나 언론은 이같은 의미와 성과에 대한 평가를 철저히 외면했다. 각 종단과 문인단체 등이 부문별 접촉에서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들을 벌이기로 합의하는 등 진전도 있었으나 ‘김일성 인형 본 뒤 눈시울 적시기도’ 등 ‘돌출행동’ 부각 속에서 역시 무시됐다.



김 주석 밀랍상 앞 눈물의 진실



대표적인 돌출행동 사례로 지목된 김일성 주석 밀랍 인형 앞에서 눈물을 흘린 당사자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눈물이 북한 김일성 주석에 대한 감정의 표현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아들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이 인사는 “아들이 살아서 여기에 왔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까 저절로 눈물이 났다. (아들이)너무도 그립고 아쉬우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이 인사는 또 “이런 눈물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분노한다”며 언론의 보도태도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김숙희 YMCA회장 발언 논란



조선일보가 같은날 보도한 <백두산 가서 “훌륭한 장군님”>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일성 밀랍상 앞에서 수십명의 참가자들이 큰절을 올리고, 몇몇은 엎드려서 크게 울먹였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된 김숙희 YMCA연합회 회장은 통일뉴스 기자와의 전화에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김 회장은 “몇 사람이 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울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게 전부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당기사를 쓴 조선일보 기자는 “김회장이 정정을 요구하거나 항의하지 않은 것을 보면 (발언여부에 대해) 충분히 설명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범민련 ‘방북 지령’ 보도 해프닝



방북단 ‘돌출행동’ 보도로가속도가 붙은 언론은 결국 지난 21일 ‘방북 지령’ 해프닝을 벌였다. 22일자 대한매일은 초판 1면 기사 제목을 검찰 발표 내용을 그대로 인용, ‘일부인사 북 지령 받고 방북’이라고 했다가 검찰이 이를 번복하자 시내판에선 ‘방북 일부인사 북과 사전교신’이라고 바꿔 안팎의 비판을 자초했다. 조선 역시 같은날자 초판에 ‘방북단 일부 북 사전지령 받아’라고 했다가 시내판에서 바꿨다.

범민련과 관련된 보도에서 언론은 또 검찰 수사내용인 사전 교신 부분만 집중 부각시킬 뿐 이번 평양 접촉에서 지금껏 이적단체 시비의 핵심 이유였던 ‘연방제 통일’과 ‘범민족대회’ 강령을 ‘7·4 남북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 지지’로 수정했다는 사실도 외면했다.



현장 스케치가 서울선 스트레이트



이런 언론의 부풀리기와 일방통행식 보도태도는 평양 현지의 방북취재단이 출고한 기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남쪽에서 파란을 일으킨 지난 17일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방명록 사건의 경우도 사실 공동취재단은 현지에서 스케치 기사로 출고했으나 각 언론사들이 이를 1면 주요기사로 확대 보도했다. 공동취재단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됐다면 단순 사안으로 그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김주석상 앞 눈물 등 다른 돌출행동도 사실확인 부족과 앞 뒤 정황에 대한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보도될 경우 불필요한 사회적 파장이 빚어질 것을 우려, 공동기자단은 기사화하지 않기로 하는 등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중앙일보를 제외한 다른 신문들은 23일자 초판까지도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