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일개 수습인 내가 이른바 ‘기자칼럼’에 과연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기자구실도 못하는데 기자 칼럼이 웬 말이더냐. 다만 이제 수습기자실에서만큼은 최고참 수습으로서 ‘수습기자 칼럼’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수습생활을 쓰기로 했다.
최근 들어 여기자가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경찰들에게 여기자는 낯선 존재다.
‘이봐, 이리와봐,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강력반 마와리를 돌던 어느 여름날, 모 경찰서 강력반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그동안 자신이 모아두었던 파일을 자랑스레 펼쳐 보여줬다. 온갖 토막난 시체들 사진이 빼곡이 전시돼 있었고, 각종 변사사진과 살해된 피해자들의 사진이 나열돼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표정관리 하느라 애썼던 나는 이런 사진을 모아둔 형사가 변태가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사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여자는 어떻게 죽었고, 어디가 몇 번 찔렸으며, 검사를 해 봤더니 그 나이 되도록 처녀였더라…’ 등등. ‘어, 그래요? 그렇구나.’ 사실 궁금하기도 했으므로 계속 끝까지 듣고 있었더니 어느새 이제 강의가 끝났다는 듯, ‘내가 무슨 일 있으면 연락줄께, 가봐.’ 라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었다. 나중에 그 곳을 찾았던 모든 여기자들이 그 ‘강의’를 들은 것으로 밝혀졌다.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무덥던 사쓰마리 생활 한가운데에 내 일기장 어딘가에 써 있던 말이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잘못들에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괴감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기자의 최대 강점은 역시 뛰어난 기억상실증에 있다. 어제 싸웠던 경찰과 쫄면을 나눠 먹으며 마치 언제 갈등이 있었냐는 듯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싸울 때는 그토록 열렬하게 소리를 질러가며 싸웠건만 다음날이면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리는 나를 보고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경찰뿐만이 아니었다. ‘이러다 핸드폰 터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할 만큼 나를 많이 혼냈던 모든 선배들을 지금은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단순한 기억상실증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간 경찰기자 생활을 하며 ‘온 힘’을 다해 부딪혔던 모든 것들에 ‘깊은 정’이 들었기 때문이라고생각한다.
사소한 일들은 잊어버릴지라도, 다음 주 사회부를 떠나며 느낄 말못할 아쉬움만큼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