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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하기 위해 서울 왔나"

김상철 기자  2001.09.08 1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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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방한한 국제언론인협회(IPI)·세계신문협회(WAN) 합동조사단이 ‘특별 조사’라는 취지에 맞지 않게 ‘정부의 언론탄압’이라는 예단을 갖고 편향적인 활동을 벌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요한 프리츠 IPI 사무총장, 브루스 브룩만 미국 IPI위원회 이사, 닐스 오이 유럽 IPI위원회 이사, 로저 파킨슨 WAN 회장 등 4명으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은 방한 다음날 곧바로 한국을 언론자유 탄압 감시 대상국(Watch List)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하는 등 조사의 형평성을 훼손하는 문제를 노출했다. 특히 요한 프리츠 사무총장은 6일 기자회견 석상에서 “지난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이를 통과시켰다”고 밝혀 사전각본에 의한 조사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감시 대상국 포함은 첫날인 5일 구속사주 3명 면담, 6일 오홍근 국정홍보처장, 신문협회 최학래 회장 면담, 한나라당, 중앙일보 방문 이후 전격 발표한 것이다. 관련기사 4·5면

이같은 조치에 대해 IPI는 “세무조사 전후 표현의 자유나 기자들이 의견을 피력할 자유가 제한 받은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정부가 계획적으로 언론사 소유구조를 바꾸고 언론자유를 구속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밝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낳았다. 기자들의 활동이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려 하기 때문에 감시대상국에 넣었다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IPI는 군사정권 시절 기자들의 대량해직 당시에는 한국을 감시대상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조사단은 이날 한국 언론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기업 세무조사에 대한 잠재적 위협과 광고주들에 대한 압력은 아직도 몇몇 신문과 방송이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기 검열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는 올 2월 미국 국무부 인권 보고서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는 세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2000년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이며, 99년 보고서에도 같은 내용이 언급되는 등 이미 국내언론의 보도 자체가 문제시됐던 사안이었다.

조사단은 또 세무조사 필요성에 동의했던 다른 설문결과는 거론하지 않고 ‘국민들의 56%가 세무조사는 비판언론을 억압하기 위해 실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MBC 여론조사만을 인용하기도 했다.

IPI·WAN 합동조사단 일정에서도 편향조사 문제가 제기됐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6일 IPI측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기존 일정 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에대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한 관계자는 “IPI가 한국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공정하게 판단토록 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던 것”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사실상 방한하자마자 감시 대상국 발표를 해버린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애초 일정에 없었으나 면담을 요청해 8일 조사단을 만나기로 했던 언론개혁시민연대도 7일 회의를 열고 면담을 거부키로 결정했다. 언개연은 “IPI의 감시 대상국 발표로 편향적인 시각에 의한 예단을 지닌 채 조사에 착수했음이 명확히 드러난 이상, 면담은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조사과정에서는 자체 혼선 양상도 노출됐다. 조사단은 7일 오전 민주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감시 대상국 발표를 했다는 지적에 대해 “사실 어제 발표를 하고 나서 내부적으로도 발표 타이밍에 문제가 있었다는 논란도 있었다”고 밝혔다. 같은날 오후 조사단은 동아일보 노조와의 면담에서 “이번 방문은 언론탄압에 맞서는 언론사와 기자들을 지지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 진상조사가 주 목적이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당초 IPI 한국위원회가 조사단 방한에 앞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조사단 성격에 대해 ‘특별 조사단’임을 분명히 했고 조사목적에 대해서도 “세무조사 및 언론사주 구속과 관련 한국언론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자유 침해 사례에 대한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