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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날' 먹칠한 대통령 '찬가'

KBS 뉴스라인 대통령 기념사 10분간 머릿기사로

서정은 기자  2001.09.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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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3일 마감뉴스에서 방송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10분 넘게 톱뉴스로 내보내 물의를 빚고 있다.

KBS ‘뉴스라인’은 3일 첫 뉴스로 ‘흔들림없는 햇볕정책 유지’를 강조한 김 대통령의 연설내용 8분 40초를 통편집으로 내보냈다. 이어 다음 꼭지로 ‘방송이 민족적 소명을 이룩하는데 공헌해주길 바란다’는 요지의 연설내용을 보도했다. 대통령 연설내용이 10분 이상 톱뉴스로 보도되자 KBS 기자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사장의 지시가 있었던 게 아니냐”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보도국 한 기자는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안 가결이 당연히 톱뉴스여야 했다”며 “순수하게 보도국 간부들의 자체 판단이라고 해도 큰 문제이지만 사장의 지시나 언급 없이 이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MBC는 9시 뉴스데스크에서 방송의 날 기념행사를 단신처리했으며 김 대통령의 축하 연설도 따로 보도하지 않았다.

KBS 지회(지회장 용태영)는 4일과 6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보도 경위를 조사했다. 용태영 지회장은 “사장이나 외부의 지시 여부를 조사했으나 간부들은 자체 판단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보도국장이 뉴스가치가 있다고 판단, ‘뉴스라인’ 담당부장에게 10분 이내에서 보도하라고 지시했는데 담당 부장이 톱뉴스로 올렸다는 것이다.

‘뉴스라인’ 담당 부장도 기자들과의 면담에서 “청와대 이태복 복지노동수석이 출연하기로 돼 있었는데 대통령 연설을 그 뒤로 미루자니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뉴스 중간에 넣으면 시청자들이 뉴스가 끝난 줄 알 것 같아 고심하다가 첫 뉴스로 내보냈다”며 “본인 실수로 물의를 빚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은 간부들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분위기다. 보도국 한 기자는 “보도국장은 방송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대통령 연설내용이 괜찮았다는 보고를 받은 뒤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보도국장이 평소 ‘사장도 뉴스에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상황이 재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다른 한 기자는 “대통령이 방송의 날을 기념해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했는데 거꾸로 KBS는 대통령을 의식한 무리한보도로 안팎의 빈축을 샀다”며 “방송 스스로 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퇴색시킨 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