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언론인협회(IPI)가 오는 10월 이사회를 앞두고 있으면서 지난 8월말 이사들과의 개별연락을 통해 한국을 언론탄압 감시대상국(IPI Watch List)으로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국가적 위신이 걸린 중요한 문제를 이사회에서의 충분한 토론 없이 전화와 팩스를 통한 개별연락만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IPI 조사단이 9월 5일부터 8일까지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고 10월에는 파리에서 이사회가 열리는 데도 굳이 서둘러 한국을 감시대상국으로 선정한 배경에도 의혹이 쏠리고 있다. 조사단이 방한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 이를 토대로 이사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친 뒤 결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결정한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본보 확인 결과 IPI는 지난 8월말 이사들에게 개별연락을 넣어 한국을 감시대상국으로 포함하는 안건에 대한 찬반 의견을 취합한 것으로 밝혀졌다. IPI 본부측은 본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사들에게 전화, 팩스, 이메일 등으로 한국 관련 자료를 보내 찬반 의견을 취합했다”고 밝혔다. IPI 한국위원회 최승호 사무국장도 “IPI 규약을 보면 사무총장이 이사회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며 “공식적인 회의를 갖지는 않았으나 이사 23명의 서명을 모두 받았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는 없으며 러시아의 경우도 이사회 전에 감시대상국으로 선정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IPI의 감시대상국 결정은 국가적 위신이 걸린 중요한 사안인 만큼 신중하고 객관적인 토론이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신기남 의원은 11일 국정홍보처의 국감 질의요지에서 “국제기구인 IPI가 국가적 위신이 걸린 사안을 결정하려면 정식 이사회를 개최해 논의해야 한다”며 “그렇지 못했다면 이사회의 결정사항이라는 IPI의 주장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IPI는 한국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대해서도 정식 이사회 전에 감시대상국으로 결정한 전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베네수엘라, 스리랑카, 페루 등 대부분의 경우 공식 이사회를 거쳤다. IPI 홈페이지에 있는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최근 IPI는 2000년 10월 2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러시아, 페루, 스리랑카, 베네수엘라를 언론감시국으로 결정했다. 또 지난 1월 26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러시아, 스리랑카, 베네수엘라를 언론감시국으로 결정했다.
한편 요한 프리츠 IPI 사무총장이 이사들에게 개별연락을 취하면서 제공한 한국 관련 자료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으나 IPI 본부는 공개를 거부했다. IPI 본부 한 관계자는 “당시 제공한 자료는 IPI 이사들을 위한 자료이기 때문에 외부에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